
말을 잘하는 능력은 대개 자기를 드러내는 데 유리한 재능으로 여겨진다.
회의에서 생각을 또렷하게 설명하고, 반대 앞에서 논리를 세우고, 필요한 자원을 얻도록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은 실제로 중요하다. 교회에서도 말 잘하는 사람이 대개 앞에 선다. 기도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대표기도를 맡고,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 회의를 이끈다.
그런데 잠언 31장은 말의 힘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묻는다. 왕에게 입을 열라고 명하면서, 그 입이 향할 곳을 자기 업적이나 명예가 아니라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송사로 정한다.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권리이기 전에 책임일 수 있다.
어머니가 아들 왕에게 남긴 말
잠언 3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1절).
르무엘이 어느 나라의 왕이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잠언 전체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이라고 이름이 붙은 단락은 이것 하나라는 점이다. 왕이 된 아들에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것은 전쟁의 기술도, 나라를 넓히는 법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먼저 피해야 할 것을 말한다. 여자들에게 힘을 쏟지 말라. 그리고 술을 경계하라.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5절).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요청한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8-9절).
같은 말이 두 번 되풀이된다. 입을 열라. 입을 열라. 권력의 마지막 시험은 약자의 자리에서 치러진다는 뜻이다.
권력의 마지막 시험은 약자의 자리다
왕의 능력은 명령을 얼마나 빨리 관철하는지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그의 결정 앞에서 쉽게 지워지는 사람이 제대로 들리는가가 더 깊은 시험이 된다.
본문의 '말 못하는 자'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할 힘이나 대변해 줄 사람을 갖지 못한 이들까지 넓게 가리키는 말로 풀이된다. 함께 나오는 '모든 고독한 자'는 히브리어로 보면 '사라져 가는 자들의 자식'쯤 되는 표현이다. 기댈 데 없이 밀려나 잊혀 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사실을 알고도 말할 자리를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말했지만 기록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전문 용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믿어 주지 않는다. 발언할 기회가 형식적으로 있었다는 것과, 그 사람의 사정이 실제 판단에 반영되었다는 것은 같지 않다.
그래서 공정함은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려운 절차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서툰 표현 속에서도 핵심 사실을 확인하고, 불이익이 두려운 사람이 안전하게 말할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이 한 걸음 물러나 주어야 비로소 같은 출발선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약자를 위한 입은 그를 대신해 모든 결론을 정해 주는 입이 아니다. 그의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리를 여는 입이다.
약자를 위한 입은
대신 결론을 내리는 입이 아니라
그의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자리를 여는 입이다.
흐려진 판단의 값은 다른 사람이 치른다

왕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까닭도 눈여겨볼 만하다. 잠언은 개인의 품위를 지키라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판단이 흐려져 곤고한 사람의 송사를 굽게 할 위험을 말한다.
책임 있는 자리의 방심은 그 사람 혼자서 끝나지 않는다. 결정하는 사람이 사실을 대충 읽으면 누군가는 필요한 도움을 늦게 받는다. 담당자가 불편한 보고를 무시하면, 위험을 먼저 알아챈 사람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사람처럼 취급된다.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 것은 술만이 아니다. 피로, 조급함, 체면, 이미 내린 결정을 지키려는 고집도 사실을 비뚤게 만든다.
친한 사람의 설명에는 선의를 덧붙이고, 낯선 사람의 설명에는 의심부터 붙이는 습관도 그렇다. 숫자가 좋으면 과정의 상처를 사소하게 여기고, 일정이 급하면 질문을 방해로 받아들이기 쉽다. 수요일 밤 열한 시에 급하게 결정한 일이 다음 주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때 절제는 욕망을 참는 개인 훈련을 넘어선다. 내 흐린 판단의 값을 약한 사람이 대신 치르지 않게 하는 공적인 책임이 된다.
멈추는 절차가 필요한 이유
그래서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잠시 멈추는 절차가 필요하다.
반대 의견을 기록으로 남기고, 결정으로 불이익을 받을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듣고, 몹시 지쳤을 때는 최종 판단을 하루 미루는 일. 비효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빠른 오판을 나중에 수습하는 비용은 훨씬 크다.
권한이 클수록 곧바로 결정하는 용기만큼,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판단의 조건을 바로잡는 절제가 필요하다. 야고보의 권면이 여기에 꼭 맞는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대신 말하기 전에 먼저 들을 것

약자를 위해 말하라는 요청은 선하다. 그러나 쉽게 또 다른 지배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처지를 충분히 듣지 않은 채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단정한다. 그의 이야기를 내 주장에 유리한 사례로만 쓴다. 그러면 보호한다는 말 아래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다시 빼앗게 된다. 선의가 있다고 해서 대표할 자격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변의 첫 단계는 웅변이 아니라 경청이다.
욥은 자기 지난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욥 29:15-16). 눈이 되고 발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리에 서 본다는 뜻이다.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았다'는 말에는 먼저 알아보는 수고가 담겨 있다.
당사자가 직접 말할 수 있다면 그가 말하도록 돕는다.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 익명이나 서면 같은 다른 통로를 마련한다. 대신 전해야 할 때에는 어디까지 나눠도 되는지 먼저 확인하고,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되묻는다.
말한 뒤에도 할 일이 남는다.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결과가 무엇인지 당사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사람을 위한 말은 사람을 빼고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살펴볼 것들
교회와 공동체에서도 선한 의도만으로는 모자라다.
발언을 독점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핀다. 질문한 사람에게 믿음이 약하다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꼬리표가 붙지 않는지 본다. 오래 다닌 교인의 말과 새로 온 사람의 말에 다른 무게를 두지 않는지 돌아본다.
회의록에 소수 의견을 남기고, 제안에 답할 기한을 정하고, 이의를 제기해도 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는 작은 규칙들. 이런 것들이 목소리를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열린 입은 열린 손으로 이어진다

잠언 31장을 끝까지 읽으면 흥미로운 연결이 보인다.
앞부분에서 왕은 말 못하는 자를 위해 입을 열라는 명령을 받는다(8-9절). 그리고 뒤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쓴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26절). 히브리어로 보면 같은 '입을 열다'라는 표현이다. 어머니가 왕에게 요구한 입과, 지혜로운 여인이 실제로 연 입이 한 장 안에서 서로 부른다.
그 여인은 또 이렇게 산다.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20절). 입과 손이 따로 가지 않는다.
잠언 31장 10절부터 31절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글자를 차례로 한 절씩 시작하는 이합체 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짜인 그 노래 안에서, 인애의 말과 곤고한 자를 향한 손이 나란히 놓여 있다.
말한 뒤에는 예산과 시간이 따라와야 한다
공의를 말하면서 실제 필요 앞에서는 손을 닫는다. 도움을 주면서 상대를 낮추는 말을 한다. 그러면 돌봄은 온전해지기 어렵다.
말은 문제를 공동체의 관심으로 옮기는 힘이 있다. 그러나 말한 뒤에는 예산과 시간, 담당자와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말씀하세요"라는 광고만 되풀이하고 신청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게 두면, 책임은 다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자원을 건네면서 설명과 선택권을 주지 않으면 도움은 통제가 될 수 있다. 열린 입은 사실을 바르게 드러내고, 열린 손은 그 사실에 맞는 몫을 기꺼이 부담한다.
이 연결은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다.
말이 느린 사람의 문장을 대신 끝내지 않고 기다리는 일. 회의에서 묻혀 버린 제안을 다시 꺼내는 일. 농담처럼 지나간 모욕을 모욕이라고 말하는 일. 결정의 근거를 쉬운 말로 설명하는 일.
작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쌓이면 공동체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내용의 진실성으로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누구의 말도 저절로 중심이 되지 않고, 누구의 말도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 질서가 조금씩 만들어진다.

선한 의도를 지켜 주는 구조
개인의 용기에만 기대는 공동체에서는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 오래가지 못한다. 용기 있는 담당자가 자리를 떠나거나 일이 몰리면, 그동안 들리던 말도 다시 사라진다.
초대교회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제자의 수가 늘어나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향해 원망했다. 매일의 구제에서 자기네 과부들이 빠진다는 것이었다(행 6:1). 사도들은 그 원망을 불평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온 공동체를 불러 모아 일곱 사람을 세웠고, 그 일을 맡겼다. 흥미롭게도 세움을 받은 일곱의 이름은 모두 헬라식이다. 목소리를 낸 쪽의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다.
선한 태도는 되풀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안건을 미리 알리고,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반대 의견과 보류한 이유를 기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작은 규칙은 관계를 차갑게 만드는 벽이 아니다. 기억과 책임이 편의에 따라 지워지지 않게 하는 약속이다.
응답 없는 창구는 불신을 키운다
말할 통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접수된 의견에 누가 답하는지, 언제까지 검토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할 때 어떤 근거를 설명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응답 없는 창구는 기대만 모으고 불신을 키운다. 교회 건의함에 넣은 쪽지가 몇 달째 아무 답이 없다면, 그 사람은 다시는 쪽지를 쓰지 않는다. 모든 요청을 들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요청을 존중하며 다룰 수는 있다. 결론이 같더라도 듣고 검토한 흔적이 남으면, 사람은 자신이 문제로 취급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대우받았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대변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내 영향력을 키우려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되풀이해서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가. 문제가 풀린 뒤에도 발언권을 계속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좋은 대변의 목표는 영원히 대신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당사자가 안전하게 자기 말로 참여하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결정의 자리에 들어오도록 길을 돌려주는 데 있다. 사도행전 6장의 일곱 사람처럼. 힘을 나누는 말이야말로 약자를 위한 말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맺으며

말할 힘은 자신을 증명하는 데만 쓰라고 주어진 능력이 아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은 권력자의 입을 가장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지혜로운 사람의 입을 인애와 이어 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이 열린 손으로 이어지게 한다. 좋은 말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빠진 사실을 돌아오게 하고 밀려난 사람에게 판단의 자리를 내어 주는 말이다.
오늘 내가 입을 열어야 할 때와 조용히 들어야 할 때를 함께 분별해야 한다. 침묵이 중립처럼 보여도 결국 힘 있는 사람의 말만 남게 한다면, 입을 열어야 한다. 반대로 내 목소리가 당사자의 말을 덮고 있다면,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말할 힘의 성숙은 얼마나 오래 말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를 살리고 어떤 책임을 감당하게 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주님, 제 입을 열어야 할 자리에서는 열게 하시고,
제 목소리가 누군가의 말을 덮을 때는 닫게 하옵소서.
제 입과 손이 함께 곤고한 자를 향하게 하옵소서.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30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