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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보다 먼저 마음을 세우는 일 | 시편 112편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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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은 대개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변경, 좋지 않은 검사 결과, 불편한 보고가 화면 위에 갑자기 뜬다. 밤 열한 시에 울린 전화 한 통,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로 시작하는 문자 한 줄. 내용이 분명하지 않아도 마음은 먼저 결론을 내린다. 가장 나쁜 경우를 상상하고, 책임질 사람을 찾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까지 미리 두려워한다.

소식 하나가 오늘의 집중만이 아니라 지난 선택의 의미와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흔들어 놓는다.

시편 112편 7절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이 구절을 감정이 강한 사람의 초상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시편은 두려움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기보다, 그 마음이 정해져 있고 견고하다고 거듭 말한다. 견고함은 충격을 받지 않는 무감각도, 모든 결과를 낙관하는 태도도 아니다. 소식이 도착하기 전에 마음을 둘 곳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에 가깝다.


'정해진 마음'과 '떠받쳐진 마음'

7절과 8절에는 마음을 두고 두 낱말이 연이어 나온다.

7절의 "굳게 정하였도다"로 옮긴 히브리어 '나콘'은 제자리에 단단히 세워졌다는 뜻이다. 흔들리는 땅 위에 기둥을 박아 넣듯, 서야 할 자리에 바로 선 모습이다. 8절의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에서 '견고하다'로 옮긴 '사묵'은 결이 조금 다르다. 무언가에 기대어 떠받쳐져 있다는 뜻이다.

두 낱말을 나란히 놓으면 이 사람의 단단함이 어디서 오는지 보인다. 스스로 이를 악물어 버티는 힘이 아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라는 말이 그 사이에 있다. 기댈 데가 있어서 서 있는 마음이다.

그래서 8절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나쁜 소식은 여전히 온다. 다만 그 소식이 마음의 자리를 빼앗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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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보다 먼저 오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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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위기 앞에서 즉시 답을 내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빠른 답은 때로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다.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서둘러 원인을 단정하고, 통제감을 되찾으려고 지나친 지시를 내린다.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필요한 확인을 미루기도 한다. 겉으로는 침착해 보여도 마음이 체면이나 통제에 붙들려 있다면, 소식이 바뀔 때마다 판단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시편이 말하는 견고함의 근거는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있다. 그래서 믿음은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다. 아직 모르는 일이 있어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결과를 다 통제할 수 없어도 옳은 태도를 버리지 않겠다는 방향이다.

마음이 정해진 사람도 놀라고 슬퍼할 수 있다. 다만 놀람이 사실을 비틀게 두지 않고, 슬픔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허가증이 되게 하지 않는다.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첫 질문은 "어떻게 없던 일로 만들까"가 아니라 "이 소식 앞에서도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일 수 있다.

정직하게 확인하고, 당사자의 말을 듣고, 판단할 자료와 추측을 나누고,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미루어 두는 것이다.

마음이 견고하다는 말은 한 번 정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실에 따라 판단은 고칠 수 있으면서도, 진실과 사랑이라는 방향은 놓치지 않는 태도다.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성품 뒤에 온다

시편 112편은 따로 떨어진 생활 지침이 아니다. 바로 앞의 111편과 짝을 이룬다.

두 시편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글자로 한 줄씩 시작하는 이합체 시다. 형식이 같고, 길이도 같다. 그리고 111편의 마지막 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111:10)가 112편의 첫 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2:1)로 곧장 이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순서다. 111편은 먼저 하나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성품을 노래한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111:4).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111:3). 그다음 112편이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을 노래하는데, 놀랍게도 같은 말들이 되돌아온다. 그 사람은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112:4)이고,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112:3).

하나님께 쓰였던 말이 사람에게 다시 쓰인다. 사람의 단단함은 타고난 기질이나 되풀이한 자기 암시가 아니라, 먼저 신실하신 분을 바라본 결과다. 그분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 그분을 조금씩 닮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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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서를 뒤집으면 신앙은 불안한 자기 관리가 된다.

흔들리면 안 된다는 명령을 자신에게 되풀이하고, 두려움을 보이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자책하게 된다. 공동체도 아픈 사람에게 "믿음으로 이겨야지요"라는 말로 감정을 빨리 정리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성도에게, 실직 소식을 막 들은 가장에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짐이 된다.

그러나 111편은 사람이 자신을 붙들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기억하신다고 노래한다.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111:5). 우리가 완벽하게 기억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기억과 신실하심이 먼저 놓여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훈련은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연습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되새기는 데서 시작한다.

막연히 잘될 것이라고 다짐하기보다, 이미 받은 은혜와 지켜 온 약속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 막막했던 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때 누가 곁에 있었는지. 예배와 기도, 함께 나누는 감사는 현실을 지우는 장치가 아니다. 마음의 기준을 현실보다 깊은 곳에 두는 일이다.

소식은 새로 도착하지만, 그 소식을 받아 낼 마음의 바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견고한 마음은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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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정보를 덜 알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시편 111편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여기서 '기리다'로 옮긴 말은 찾고 살핀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그분이 하신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믿음은 사실을 조사하는 일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과를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가 있을 때, 불편한 사실을 더 정직하게 볼 수 있다. 좋은 소식만 골라 듣거나 문제를 말한 사람을 탓하는 공동체는 평온해 보여도, 실제로는 두려움에 지배받고 있다.

나쁜 보고를 받으면 먼저 내용과 해석을 나눌 필요가 있다.

무엇이 실제로 확인되었는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가. 이렇게 차례로 적어 보면, 머릿속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 있던 두려움이 조금씩 풀린다.

곧바로 알려야 할 위험과, 더 확인한 뒤에 알릴 추측도 나누어야 한다. 잘못된 소문을 키우지 않는 절제와, 필요한 경고를 숨기지 않는 용기는 함께 가야 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지도자의 견고함도 여기서 드러난다.

뜻밖의 보고를 가져온 사람에게 화를 내면 다음 보고는 늦어진다. 반대 의견을 충성심이 모자란 탓으로 돌리면, 조직은 위험을 발견하고도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운다.

반대로 불편한 사실을 가져온 수고에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확인할 절차와 답할 시점을 분명히 하면 사람들은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다. 단단한 공동체는 나쁜 소식이 없는 곳이 아니다. 나쁜 소식도 안전하게, 진실하게 다룰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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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나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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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편의 견고한 마음은 개인의 평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이고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5절). 그리고 이렇게 산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9절).

이 연결이 중요하다. 불안은 자꾸 움켜쥐게 만든다. 정보도, 권한도, 시간도, 돈도 모자랄까 두려워 자기 쪽으로 모은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은 위기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볼 여유를 낳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를 권하면서 바로 이 9절을 인용했다.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후 9:9).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분이라고(고후 9:8). 흩어 주는 손은 넉넉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신뢰에서 열린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누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시편은 관대함과 정의로운 처리를 나란히 놓는다.

도움은 상대의 실제 필요를 듣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살피고, 특정한 사람에게 부담이 몰리지 않게 해야 한다. 위기 때의 선의가 가장 목소리 큰 사람에게만 가거나, 준비되지 않은 봉사자에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한다면, 관대함의 모양으로 불공정을 만들 수 있다.

견고한 마음은 충동적으로 베푸는 대신,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돌봄의 길을 마련한다. 장례를 치른 가정에 첫 주에 몰렸던 반찬이 셋째 주에는 끊기는 일이 흔하다. 한 번에 많이보다, 오래 꾸준히가 더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쁜 소식이 왔을 때 공동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쓰는지는, 그 마음이 어디에 세워졌는지를 보여 준다.

평판을 지키는 데만 힘을 쓰는지, 영향을 받은 사람을 보호하는 데 먼저 시간과 비용을 내는지 살펴야 한다. 설명할 책임을 미루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고, 결정 이후에도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신뢰의 실제 모습이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고백은 결국 누군가를 안심시키는 구체적인 행동이 되어야 한다.

흩어 주는 손은 넉넉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신뢰에서 열린다.


소식보다 오래 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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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편은 어둠이 없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4절). 어둠 가운데, 빛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믿음은 어둠을 밝다고 부르는 기술이 아니다. 나쁜 소식을 좋은 소식으로 포장하지 않고도, 그 안에서 자비와 정의를 고르는 일이다. 모든 문제가 풀리기 전에 정직하게 설명하고, 답을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고, 불안한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것. 그런 행동이 어둠 속의 작은 빛이 된다.

6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과 기억된다는 말이 한 절에 함께 있다. 소식은 지나가지만, 그 소식 앞에서 진실과 자비를 지킨 사람은 오래 기억된다.

오늘 어떤 소식이 도착할지 우리가 고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소식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는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준비할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억하는 것.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 두려움 때문에 움켜쥔 것을 필요한 곳에 내어놓는 연습. 그러면 견고함은 큰소리나 완벽한 통제의 모습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돌아갈 방향을 아는 조용한 힘이 된다.

바울의 권면도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마음을 지키는 이는 결국 하나님이시다.

나쁜 소식은 한동안 우리를 흔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우리 삶에 마지막 이름을 붙이게 둘 필요는 없다. 마음이 먼저 신실하신 분께 놓여 있다면, 서둘러 부정하지도, 두려움에 떠밀려 함부로 결정하지도 않을 수 있다. 잘 듣고, 정확히 확인하고, 함께 감당하고,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소식보다 먼저 마음을 세운다는 것은 미래를 아는 능력이 아니다. 어떤 미래에서도 진실과 자비를 버리지 않도록, 오늘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주님, 흉한 소식 앞에서도 제 마음을 주님께 정하게 하옵소서.
두려움이 사실을 가리지 않게 하시고,
움켜쥔 손을 펴서 곁에 있는 이를 붙들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빛이 일어나게 하시는 주님을 의뢰합니다. 아멘.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