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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공로의 대가인가, 은혜의 선물인가 |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 다시 읽기

땅은 공로의 대가인가, 은혜의 선물인가 |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 다시 읽기 본문 이미지

예레미야 24장 묵상 「마음은 명령만으로 바뀌지 않는다」를 올린 뒤, 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에스겔 11장을 인용할 때 15절만이 아니라 17절까지 함께 읽으면 예레미야 24장과의 대조가 더 분명해진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전에, 본문 밑에 흐르는 신학적 의미를 먼저 드러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안에 서로 긴장하는 두 목소리가 있고, 그것이 결국 공로냐 은혜냐는 오래된 질문과 닿아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래서 앞의 글은 그대로 두고, 이 피드백을 따라 본문을 한 번 더 깊이 읽어 보려 합니다.


두 본문이 함께 그리는 그림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은 모두 포로기의 같은 장면을 다룹니다.

주전 597년 무렵, 여고냐 왕과 지도층과 기술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 공동체를 히브리어로 '골라'(포로 공동체)라고 부르곤 합니다.

두 본문은 이 두 무리를 나란히 세우고, 같은 방향으로 판정합니다. 겉으로 보면 땅에 남은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 같지만, 하나님은 끌려간 골라 공동체를 돌보시고, 포로기 이후 그들에게 땅을 다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에스겔 11장, 15절에서 17절까지

앞의 글에서는 에스겔 11장 15절만 인용했습니다. 그런데 15절부터 17절까지를 한 덩어리로 읽어야 대조가 온전히 보입니다.

먼저 15절은 예루살렘 주민의 주장입니다. "인자야 예루살렘 주민이 너의 형제 곧 너의 형제와 친척과 온 이스라엘 족속을 향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 하였나니."

이어지는 16절과 17절은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16절).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17절).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 땅은 우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로 답하십니다. 첫째,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포로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성소가 되겠다. 둘째, 땅은 나중에 그들에게 주겠다.

예레미야 24장 4-8절이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로 보여 준 대조가, 에스겔 11장 15-17절 한 단락 안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땅을 주장하는 쪽과, 땅을 선물로 받을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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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사람들은 왜 그렇게 확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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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이 땅은 우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신 것"이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교만했다고만 보면 본문을 너무 쉽게 읽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성경적 근거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떠나지 않고 기다린 사람이라면, 그 순종을 근거로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말씀이 신명기 곳곳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할 것이며"(신 6:18).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신 8:1).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신 11:8).

순종하면 땅에 들어간다. 신명기 5장부터 11장까지 되풀이되는 이 흐름을 읽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종했다. 그러니 이 땅은 우리 것이다. 끌려간 저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신명기 안에, 이런 생각을 정면으로 막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신 9:4).

이어지는 5절은 더 분명합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6절은 이렇게 못 박습니다.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땅에 들어가는 것은 네 공의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신명기 7장도 같은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신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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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목소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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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신명기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순종하면 땅에 들어간다는 말과, 네 공의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

두 목소리는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붙듭니다.

순종의 요구는 진지합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땅을 얻는 근거, 곧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가 되는 순간, 신명기 9장이 막아섭니다. 땅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선물이었습니다. 순종은 그 선물 안에서 사는 방식이지, 선물을 사들이는 값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사람들은 신명기 6장, 8장, 11장은 붙들었지만 9장은 놓쳤습니다. 그래서 순종을 권리 주장으로 바꾸었고, 형제들을 향해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을 주신다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이 똑같이 '새 마음'의 약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렘 24:7).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겔 11:19-20).

땅을 되돌려 받는 골라 공동체는 더 잘 순종해서 그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 주시고, 먼저 마음을 주시고, 그다음에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게 됩니다. 순종은 여기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순종은 그 은혜의 열매입니다.

순종은 선물 안에서 사는 방식이지,
선물을 사들이는 값이 아닙니다.


말씀 속에서 정통 신학을 보다

이 흐름은 오늘 우리가 붙드는 정통 신학의 오래된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공로로 구원받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그리고 곧바로 덧붙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신명기 9장과 에베소서 2장은 같은 말을 합니다.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그리고 둘 다 선한 삶을 버리지 않습니다. 선한 일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걸어갈 길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은혜"를 외쳤을 때, 그것은 신약에서 갑자기 생겨난 새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에서 이미, 땅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 속에 그 은혜가 들어 있었습니다. 땅은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약속의 선물이었고, 그 땅에서의 순종은 선물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어야 했습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전에, 본문 밑에 흐르는 이 신학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적용도 더 깊어집니다.

땅은 공로의 대가인가, 은혜의 선물인가 |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 다시 읽기 본문 이미지

오늘 우리 안의 예루살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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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으면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이 땅은 우리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오래 이 교회를 지켜 왔다는 이유로, 힘들 때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봉사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어느새 그 자리를 내 권리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교회를 떠나 있다 돌아온 사람, 시험에 들어 멀어졌던 사람을 향해, 입 밖에 내지는 않아도 마음으로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마음 밑에는 신명기 6장과 8장과 11장이 있습니다. 나는 순종했다. 나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신명기 9장이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네 마음이 정직해서가 아니다.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다.

그리고 에스겔 11장 16절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하나님이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당에 오지 못하는 사람, 공동체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 같은 사람, 지금 자기가 '나쁜 무화과'처럼 느껴지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먼저 찾아가 성소가 되어 주십니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자격을 증명하기 전에.

그렇다고 순종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다르게 순종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려고 순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순종과 늘 비교합니다. 누가 더 오래 남았는지, 누가 더 많이 섬겼는지를 셉니다. 은혜로 받은 사람은 감사해서 순종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늦은 귀환을 시기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이 끝내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눅 15:28-30).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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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피드백 덕분에 본문을 한 번 더 깊이 읽었습니다.

예레미야 24장과 에스겔 11장 15-17절은 같은 대조를 보여 줍니다. 땅을 자기 것이라 주장한 예루살렘 사람들과, 멀리서 하나님이 성소가 되어 주시고 마침내 땅을 선물로 받게 될 골라 공동체. 그 대조 밑에는 신명기 안의 두 목소리가 흐릅니다. 순종하면 땅에 들어간다는 말씀과, 네 공의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 그리고 그 긴장은 은혜가 먼저이고 순종은 그 열매라는 고백으로 풀립니다.

앞의 글에서 "마음은 명령만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이제 한 문장을 더 보태고 싶습니다. 땅도, 마음도, 구원도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비로소 자랑 없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남아 있었다는 이유로
주님의 선물을 제 권리로 삼지 않게 하옵소서.
멀리 있는 형제에게 먼저 성소가 되어 주신 주님처럼,
저도 돌아오는 이를 기뻐 맞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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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명령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 예레미야 24장 묵상 —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5182457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2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