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나눔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성경을 읽다 궁금한 게 생기면, 이제는 목회자나 교우보다 인공지능에게 먼저 묻는 성도가 늘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함께 낸 『한국교회 트렌드 2027』은 이들을 '프롬프트 크리스천'이라 부른다. 2026년 5~6월 담임목사와 성도, 청년부 사역자 등 3,750명을 대상으로 여섯 갈래의 조사를 벌인 결과를 담은 책이다. 열 가지 키워드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이 말이다.

책의 진단은 이렇다. AI는 더 이상 신앙 정보를 찾는 검색창에 머물지 않는다. 신앙의 질문과 고민을 꺼내 놓는 첫 자리가 되고 있다. 조사에서 성도의 45.6%, 목회자의 86.6%가 생성형 AI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쓴다고 답했다.

장신대 조성실 교수는 질문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쓸까"였다면, 이제는 "어디까지 쓸까"다.

책이 이 성도들을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책은 프롬프트 크리스천을 신앙의 고민을 AI에게 먼저 묻되, 그 답은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분별하는 성도로 정의한다. 교회가 할 일은 그 분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실용주의와 치료적 신앙이라는 뿌리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같은 흐름을 미국에서는 Christianity Today가 짚었다.

북미성공회 사제이자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부활교회를 섬기는 클로드 애초 목사는 10월 1일 글에서 한 교인이 보내 준 기사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제목은 "클로드에 따른 복음". 목회자들이 앤트로픽의 AI인 클로드로 설교의 개요를 잡고 초안을 쓴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도 그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AI였다.

그는 이 기사를 다른 장면들과 겹쳐 읽는다. AI '쌍둥이'를 만들어 성도 돌봄을 늘리려 한 목회자, 세상을 떠난 사람이 AI 영상으로 '설교'하는 장면을 주일 예배에 띄운 대형교회.

그리고 칼 트루먼의 새 책 『Classical Theology for the Modern Mind』를 빌려 그 뿌리를 짚는다. 트루먼이 보는 병은 둘이다. 하나는 실용주의다. 당장 쓸모 있고 결과가 눈에 보이면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습관이다. 다른 하나는 치료적 신앙이다. 하나님을 사람을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해 주는 분으로 작게 만드는 신앙이다.

이 둘이 만나면 편의와 혁신이 모든 것을 이긴다. 복음이 비워진 자기계발 설교와 AI 목사라는 기묘한 풍경은 같은 땅에서 자란다.

트루먼이 내놓는 처방은 고전 신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처럼 전통과 함께 성경을 읽고, 니케아 신경이 고백한 삼위일체 하나님, 변하지 않으시고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크게 보는 것이다.

치료는 속도를 좋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크게 보는 신앙은 속도를 절제한다.

치료는 속도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크게 보는 신앙은
속도를 절제한다.


현장은 비서를 만들고 있다

현장의 고민은 훨씬 구체적이다.

본헤럴드 보도에 따르면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교육원과 대우능력개발원은 10월 중순, 개척교회를 위한 AI 활용 무료 교육을 검토하고 있다. 주보와 새가족 안내, 출석 통계, 행정 자동화까지 'AI 목회·행정 비서'를 직접 만들어 보는 실습이라고 한다.

작은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교육은 외면할 일이 아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설교와 심방과 서류를 한꺼번에 짊어진다. 수요일 밤에 주보를 만들고, 목요일에 출석부를 정리하고, 금요일에 심방을 다녀와 다시 설교 원고를 편다. 비서가 생기면 그 시간 일부를 목양에 돌릴 수 있다.

문제는 비서가 목회자를 대신하는 순간이다.

주보 문구를 다듬어 주던 비서가 어느새 새가족에게 보낼 환영 편지를 쓰고, 그 편지가 다음에는 장례 위로 문자가 되고, 그다음에는 상담 답장이 된다. 경계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편리함이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간다.

그래서 비서를 만들 때 함께 정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비서가 하지 않을 일의 목록이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숫자가 보여 주는 간극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한국교회 트렌드 2027』에 실린 조사는 그 경계를 숫자로도 보여 준다.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목회 역량으로 성도 38.9%, 목회자 42.0%가 'AI가 대체할 수 없는 관계적 목회'를 1순위로 꼽았다. 성도와 목회자가 같은 답을 가장 많이 골랐다는 점이 의미 있다.

AI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성도 52.2%, 목회자 65.7%였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에 지침이 있다는 목회자는 9.7%, 공식 지침이 있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목회자 열 명 가운데 여섯 넘게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기준을 가진 교회는 열 곳에 한 곳도 안 된다. 필요와 현장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크다.

교단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예장합동은 지난 9월 제111회 총회에서 'AI 윤리 및 신앙 활용 가이드라인'을 공식 채택했고, 심방과 상담 같은 인격적 목양을 AI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았다. 그러나 교단의 기준이 개교회의 기준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우리 교회 사무실에서, 우리 교회 단체방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맡길지는 결국 각 교회가 정해야 한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바다의 짠물을 마시듯

미국의 그렉 쿳소나 목사는 Christianity Today 9월 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챗봇과도」에서 다른 각도로 같은 문제를 다룬다.

그가 인용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12~21세 가운데 19.2%가 슬프거나 화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챗봇을 찾는다.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는 비율(19.8%)과 거의 같다.

그는 새벽 네 시에 챗봇에게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운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한다.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사람 대신 늘 깨어 있는 기계에 기대는 습관을 얻었다. 쿳소나는 이것을 바다의 짠물을 마시는 일에 빗댄다. 마실수록 목이 더 마르다.

챗봇은 밤낮으로 대답한다. 하지만 깊은 연결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는 창세기 2장 18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를 붙든다. 그리고 교회가 누군가에게 '살을 입은 예수'가 되어 주라고 권한다.


성도가 AI의 답을 들고 왔을 때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오늘의 목회 질문은 기술 사용법보다 짧다.

성도가 AI의 답을 들고 찾아왔을 때, 우리는 더 빠른 답을 덧붙일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앉아 있는 방과 관계와 눈물을 물어볼 것인가.

"목사님, AI한테 물어봤더니 이렇게 말하던데요." 이런 말을 들으면 먼저 그 답이 맞는지 틀린지를 가리고 싶어진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성경 해석이 틀렸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왜 그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그 밤에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는지, 왜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게 먼저 물었는지.

어쩌면 그 성도는 판단받을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목사님이 바쁘실까 봐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쳐야 할 것은 AI의 답보다 교회의 공기다.

그래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작고 구체적이다.

"AI에게 물어본 것 들고 오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먼저 말해 주는 것. 성경공부 시간에 AI가 낸 답을 함께 펴 놓고, 어디가 맞고 어디가 비었는지 같이 읽어 보는 것. 목회자도 자신이 AI를 어디에 쓰고 어디에는 쓰지 않는지 성도들 앞에서 정직하게 밝히는 것. 그리고 늦은 밤에 문자를 보내도 괜찮은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

프롬프트는 묻게 한다. 목회는 곁에 선다.

프롬프트는 묻게 한다.
목회는 곁에 선다.


빛 가운데 가져와 함께 분별하는 공동체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본문 이미지

고전 신학을 되찾는다는 것은 낡은 용어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효율보다 하나님을 크게 보는 일이다. 비서 AI는 쓰되, 책임과 심방과 기도는 사람에게 남겨 두는 일이다. 결과가 빨리 보이지 않아도 한 사람 곁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프롬프트 크리스천 시대의 교회는 AI를 숨기는 곳도, 무조건 금하는 곳도 아니어야 한다. 쓰는 사실을 빛 가운데로 가져와 함께 분별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바울의 권면처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성도는 앞으로도 AI에게 물을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그 질문이 결국 공동체의 식탁과 말씀 앞으로 돌아오게 할 수는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오늘 목회자의 몫이다.


함께 읽기

· NPR 조사로 본 AI와 영적 돌봄 | 영성은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 —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6457394

· 교회 AI 위험대장 만들기 | 도입 전 한 장으로 정하는 책임선 —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5311627

참고 자료

· 목회데이터연구소·희망친구 기아대책, 『한국교회 트렌드 2027』(규장, 2026) / 국민일보·노컷뉴스·뉴스앤넷 보도

· Claude Atcho, How We Got to AI 'Pastors' and Self-Help Preaching Void of the Gospel, Christianity Today (2026.10.1)

· Greg Cootsona, It's Not Good to Be Alone—with Chatbots, Christianity Today (2026.9.14)

· 본헤럴드, 기성 총회 교육원 개척교회 AI 활용 교육 보도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4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