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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목사 디지털 쌍둥이 | 대답은 밤새 하지만 청산할 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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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밸리호의 저스틴 레스터 목사는 자신의 설교와 팟캐스트와 책, 문자와 이메일까지 합쳐 약 200만 단어로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었다.

이 AI는 목사의 말투로 밤낮없이 수백 명과 대화한다. 심장 수술 전날 밤 불안해하는 여성을 위로했고, 실직으로 절망한 사람에게 조언했으며, 캠프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이 이야기를 시카고의 크리스 버틀러 목사가 10월 5일 Christianity Today에서 다시 꺼냈다. 그가 붙인 제목은 「AI가 목회자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있다」였다.

뉴욕타임스를 인용한 보도에는 이런 장면도 있다. 목사가 예배 뒤 한 젊은 여성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섰는데, 그 여성이 차에 가면서 곧바로 휴대전화로 그의 디지털 쌍둥이와 대화를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악수를 한 사람보다 화면 속 분신에게 먼저 마음을 여는 일이 벌어졌다. 이 장면이 이 글의 질문이다.


마음은 이해가 간다

레스터 목사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한 사람의 목회자가 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벽 두 시에 걸려 오는 전화를 다 받을 수도 없다. 장례 사흘 뒤에 오는 문자, 시험 전날 밤의 불안, 이사 온 첫 주의 외로움은 대개 목사가 잠든 시간에 찾아온다. 그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성도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은 목회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봤을 것이다. 이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런데 버틀러가 짚는 지점은 마음의 선함이 아니라 구조다. 그는 히브리서 13장 17절을 인용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 히브리서 13장 17절

'청산할 자'로 옮겨진 말은 헬라어로 '셈을 해서 보고한다', 곧 자기가 한 일을 두고 계산해 답한다는 뜻의 낱말이다. 인도자는 성도의 영혼을 위해 깨어 있되,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그 일을 두고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면, AI 복제본은 말을 건넬 수는 있지만 그 말을 두고 하나님께 답할 수는 없다.

AI에게는 걸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 틀린 위로를 건네도 다음 날 아침 그 성도의 얼굴을 볼 일이 없고, 잘못된 조언으로 한 가정이 어긋나도 밤새 잠 못 이룰 일이 없다. 책임을 질 수 없는 존재가 책임이 필요한 자리에 앉아 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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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목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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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가리키는 성경의 그림은 처음부터 책임과 함께 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하시고, 삯꾼과 목자를 나누셨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10:12-13). 삯꾼과 목자의 차이는 말솜씨나 능력이 아니다. 이리가 올 때 남아 있느냐 도망가느냐다. 걸린 것이 있느냐의 문제다.

에스겔 34장의 책망도 같은 자리를 겨냥한다.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겔 34:4). 연약한 자, 병든 자, 상한 자, 쫓기는 자, 잃어버린 자. 모두 몸으로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남긴 말은 더 구체적이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그는 이어서 자신이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20:31)을 기억하라고 한다. 밤낮 쉬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AI도 못지않다. 그러나 눈물은 다르다. 눈물은 걸린 것이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고 권한다. 본이 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삶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말투는 복제할 수 있어도 삶은 복제할 수 없다.


책임을 묻지 않는 목사가 되어 가는 AI

버틀러가 더 아프게 찌르는 대목은 따로 있다.

우리 사회는 남에게 책임을 묻는 데는 열심이면서, 자신이 책임을 요구받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볼 수 없는 목사가 어떤 이들에게는 정확히 원하던 목사가 된다. 눈썹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다 들어 주는 상대다. 3천만 번 넘게 내려받았다는 '바이블 챗'이 죄를 털어놓는 고해의 자리가 되어 가는 현실도 그는 같은 맥락에서 본다. 죄를 고백하는 일은 용서를 받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이 누군가 앞에 드러나는 일이다. 드러나지 않는 고백은 편하지만, 편한 고백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여기서 버틀러가 공정하게 하는 일이 있다. 그는 권위의 남용이 실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목회자의 조작과 은폐로 상처받은 사람이 있고, 그 상처가 교회를 떠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책임을 지지 않는 목회자 대신 책임을 묻지 않는 AI를 세우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나쁜 권위를 고치는 길은 권위를 없애는 데 있지 않고, 지역 교회 안에서 서로 책임지는 권위에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목회자가 성도 앞에서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약하다면, 성도가 목사 대신 기계를 찾는 일은 불가피한 결과일 수 있다. 질문을 받아 주지 않는 교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직분자, 소문이 도는 상담실이 사람들을 화면으로 밀어낸다. AI를 비판하기 전에 사람이 맡은 자리가 믿을 만한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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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재림교회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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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개신교만의 것이 아니다.

Angelus News는 10월 5일, 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사제의 날'(9월 28일) 소식을 전했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출신으로 지금은 로스앨토스의 성 시몬 성당 주임인 브렌던 맥과이어 신부가 사제들 앞에서 AI를 방관하지 말고 신중하게 다뤄 보라고 요청했다. 그는 앤트로픽 클로드의 운영 지침을 다듬는 일에도 의견을 낸 사람이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소박하고 구체적이다. 한 사제는 챗GPT에게 전례력을 깔끔한 표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부활절 날짜를 틀리게 알려 주더라고 했다. 다른 사제는 대학 캠퍼스에서 이미 AI를 상담사로 쓰고 있는 학생들, 곧 감정적 지지와 인생의 결정, 재정 문제까지 물어보는 학생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맥과이어 신부는 "내일 강론을 써 줘" 같은 단순한 프롬프트를 경계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사람들, 당신의 회중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보고 느낄 것이다.

재림교회 독립 매체 Spectrum에는 10월 4일 나탈리 브루존의 칼럼 「The Machine Behind the Pulpit」이 실렸다. 재림교회 성경연구소(BRI)는 AI가 번역과 접근성, 자료 조사, 행정, 선교를 도울 수는 있어도 비판적 사고와 성경 해석, 설교 준비, 기도문 쓰기, 목회 같은 사람의 일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경고를 내놓았다. 브루존은 이 도구가 일을 돕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를 빚어 가는 일을 피하게 만들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썼다. 도구를 쓰면서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질문이다. 이 내용은 Spectrum 본문이 열리지 않아 BRI의 안내와 보도 요약에 근거해 정리했다.

세 교단의 이야기가 같은 곳을 가리킨다. AI는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목양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 교회의 계획표에 비워 둘 한 칸

국내에서도 AI를 목회에 어떻게 쓸지를 두고 배우고 토론하는 자리가 늘고 있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7』이 보여 준 숫자는 이미 이 블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다. 목회자의 86.6%와 성도의 45.6%가 생성형 AI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쓰는데, 교회에 AI 지침이 있다는 목회자는 9.7%에 그쳤다. 배우는 일은 필요하다. 행정이나 자료 조사에서 AI가 덜어 주는 수고도 분명히 있다. 그 쓰임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내년 목회 계획표를 AI와 함께 짜면서 한 칸만은 비워 두었으면 한다. '청산할 자로서 누구를 찾아가 얼굴을 볼 것인가' 하는 칸이다. 설교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 주보를 다듬는 시간, 회의록을 만드는 시간이 AI 덕에 줄어들었다면, 줄어든 만큼의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를 계획표에 적어야 한다. 그 시간이 다시 화면 앞에 머문다면 AI는 목회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목회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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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분신을 만들겠다는 교회가 있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정해 놓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보도된 사례가 아니라 제 제안이다. 성도에게 이것이 AI라고 분명히 알린다. 위기와 건강, 안전, 학대 같은 말이 나오면 곧바로 사람 담당자에게 연결한다. 기록을 누가 보고 어디에 보관하는지 밝힌다. 책임지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둔다. 상담이나 고백의 자리로 쓰이지 않게 한다. 이 다섯 가지가 서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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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는 일과 책임지는 일

AI는 밤새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답과 책임은 다르다.

수술 전날 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위로문보다, 다음 날 아침 병원 복도에 서 있을 사람이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열릴 때까지 같은 의자에 앉아 있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 성도의 영혼을 두고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다. 위로의 문장은 기계가 쓸 수 있어도 그 곁에 앉아 있는 일은 몸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기계가 넓혀 준 시간은 그 청산을 위해 써야 한다. 새로 생긴 한 시간에 심방 한 집을 더 가고, 문자 대신 전화를 걸고, 소식 뜸한 성도의 이름을 불러 보아야 한다. 목회의 권위는 더 많이 말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끝까지 책임지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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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이신 주님, 밤새 대답하는 기계 앞에서
끝까지 곁에 있는 사람으로 서게 하옵소서.
도구는 손에 들되 양 떼의 이름은 마음에 두게 하시고
언젠가 주님 앞에서 청산할 날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맞게 하옵소서. 아멘.


함께 읽기

NPR 조사로 본 AI와 영적 돌봄 | 영성은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6457394

한국교회 트렌드 2027 프롬프트 크리스천 | 프롬프트는 묻지만, 목회는 곁에 선다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31133342

AI 의식 논쟁과 목회 | 기계의 영혼을 묻는 사이 성도의 영혼은 누가 돌보나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31923158

참고 자료

Chris Butler, AI Is Weakening Pastors' Authority, Christianity Today (2026.10.5)

Silicon Valley's Fr. Brendan McGuire tells LA priests to engage with AI carefully, Angelus News (2026.10.5)

Natalie Bruzon, The Machine Behind the Pulpit: Discerning AI Usage in the Church, Spectrum Magazine (2026.10.4)

뉴욕타임스의 저스틴 레스터 목사 보도를 인용한 여러 매체 기사

성경: 개역개정 요 10:11-15, 겔 34:2-4, 행 20:28, 31, 벧전 5:1-4, 히 13:7, 17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6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