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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 잠언 30장 32-33절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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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이 벌어진 뒤 사람들은 흔히 뜻밖의 일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그날따라 상대가 예민했고, 우연히 말 한마디가 잘못 놓였다고 설명한다. 주일 점심 뒤 주방 정리를 두고 두 집사님이 언성을 높였을 때도, 회의에서 한 청년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도 그랬다. 옆에서 본 사람들은 "원래 그런 분들이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정말 모든 다툼이 갑자기 생길까. 잠언 30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르게 말한다.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잠 30:33). 번역본에 따라 '엉긴 젖' 대신 '버터'로 옮기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림은 같다. 결과만 보면 돌발 사건 같지만 그 앞에는 반복된 힘이 있었다. 젖은 누군가 저었기 때문에 엉겼고, 코는 누군가 비틀었기 때문에 피가 났다.

관계의 파열은 대개 어느 한순간의 폭발이기보다 오래 누르고 비튼 시간의 결산이다. 이 글은 잠언의 마지막 두 절을 따라, 다툼이 생기기 전의 압력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낮출 수 있는지 묻는다.


결과보다 먼저 압력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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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드러난 결과에 주목하는 데 익숙하다.

언성이 높아진 사람, 문을 세게 닫은 사람, 회의를 깨고 나간 사람은 눈에 잘 띈다. 그래서 마지막 행동을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 쉽다. 물론 폭언과 위협은 정당화될 수 없고 각자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마지막 장면만 떼어 보면 갈등을 낳은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무시한 일, 약속을 가볍게 바꾼 일,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은 일도 관계에 압력을 더한다.

잠언은 이 압력의 이미지를 여러 곳에서 쓴다. 잠언 17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둑은 처음에 가는 물줄기로 샌다. 그때 막지 않으면 틈은 커지고 한순간에 무너진다. 잠언 26장 21절도 같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불은 누군가 계속 숯을 더해 주기 때문에 탄다. 20절은 그 반대편을 말한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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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비유가 날카로운 까닭은 원인과 결과 사이를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젖이 저절로 엉긴 것이 아니며 코피도 아무 까닭 없이 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반복해서 저었고 비틀었다. 다툼 역시 감정이라는 안개 속에서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빈정거림을 농담이라 부르고, 무례를 솔직함이라 부르며, 침묵을 동의로 간주할 때 압력은 쌓인다. 작은 자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시간이 큰 충돌을 준비한다.

갈등을 줄이려면 누가 먼저 소리쳤는가만 묻지 말고 무엇이 계속 눌렸는가를 물어야 한다. 어떤 말이 되풀이되었는지, 누구의 설명이 자꾸 잘렸는지, 어떤 부담이 당연한 몫처럼 한쪽에만 놓였는지 살펴야 한다. 이것은 잘못한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각 사람이 자신이 만든 압력까지 책임지게 하는 더 정직한 점검이다. 잠언 18장 17절도 이 점검을 권한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먼저 들은 이야기가 그럴듯해도 반대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판단을 미뤄야 한다.


높은 마음은 입보다 먼저 움직인다

잠언 30장은 다툼의 원인을 말하기 바로 앞에서 이렇게 권한다.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30:32).

이 순서가 중요하다.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기 전에 마음은 이미 높은 자리를 골랐을 수 있다. 나는 사정을 다 알고 있고, 내 판단은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상대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말의 온도를 올린다. 다툼은 의견의 차이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서려 할 때 차이는 쉽게 모욕이 된다. 잠언 29장 22절은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고 한다. 야고보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성냄이 아무리 옳은 명분을 붙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입을 막는 일은 단순히 말을 참는 기술이 아니다. 자기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행위다. 지금 하려는 말이 사실을 밝히기 위한 것인지, 상대를 작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 묻는 짧은 멈춤이다. 옳은 내용도 높은 마음에서 나오면 칼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불편한 진실도 같은 높이에서 말하면 대화의 문을 열 수 있다. 침묵이 늘 정답은 아니지만, 마음이 높아진 순간의 침묵은 진실을 더 바르게 말하기 위한 준비가 된다.

손으로 입을 막는다는 표현에는 몸을 동원한 절제가 있다. 감정이 달아오르면 생각만으로 속도를 늦추기 어렵다. 답장을 바로 보내지 않고, 물 한 잔을 마시고,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단체 대화방에서 화가 난 채로 입력창에 길게 써 놓은 글은 보내기 전에 십 분만 두어도 달라진다. 에베소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고 한다. 분 자체는 막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틈이 되느냐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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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도 이런 멈춤을 제도로 만들 수 있다. 중요한 반대 의견을 끝까지 듣고, 결정 전에 질문할 시간을 보장하며, 공개적인 지적보다 먼저 당사자와 확인하는 관행을 세우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순서를 가르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처음부터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지 않고 둘이서만 말한다. 평화는 선한 의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압력을 낮추는 습관이 필요하다.


모른다는 고백이 대화를 살린다

이 장의 처음에서 지혜자는 자신의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고백한다.

30장 1절은 이 말씀이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밝힌다. 아굴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30:2-3). 지혜를 말하는 책의 끝자락에 무지의 인정이 놓인 것은 뜻밖이다. 그러나 바로 그 고백이 마지막의 절제와 연결된다. 자신이 다 알지 못한다는 사람은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하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들을 자리를 남긴다. 반대로 모든 사정을 이미 안다고 믿는 사람에게 대화는 확인 절차가 아니라 판결 선고가 된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 있습니다"라는 한 문장은 갈등을 약화시키는 값싼 요령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다. 이 말 뒤에는 설명을 들을 책임도 따른다. 형식적으로 가능성만 열어 놓고 결국 처음 판단을 되풀이한다면 겸손한 표현조차 또 다른 압력이 된다. 모른다는 고백은 판단을 영원히 미루자는 뜻이 아니라, 충분히 듣기 전에는 확신의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약속이다.

교회와 조직에서는 신념이 강할수록 말도 강해야 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확고한 기준과 성급한 단정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아굴은 자기 무지를 고백한 뒤에 이렇게 이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30:5-6). 순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내 해석과 기억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태도는 내 해석과 기억까지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태도와 다르다. 내 지식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이 진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존심을 진리와 섞지 않게 한다. 내 말에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는 이름을 붙여 상대를 누르는 순간, 말씀에 내 것을 더한 것인지 한 번 물어야 한다.


평화는 자극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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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다루는 사람은 대개 좋은 해결 문장을 찾으려 한다.

사과의 방식, 중재의 절차, 합의문의 표현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잠언의 비유는 해결보다 앞선 예방을 가리킨다. 계속 젓지 않으면 엉기는 결과도 줄어든다. 계속 비틀지 않으면 상처가 터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평화를 만드는 첫걸음은 대단한 웅변이 아니라 불필요한 자극을 멈추는 것이다. 잠언 15장은 그 방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같은 장 18절은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덧붙인다. 개역개정은 15장 1절과 30장 33절 모두 '격동'으로 옮겼다. 과격한 말이 노를 격동한다는 것은, 말이 곧 젓는 힘이라는 뜻이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압력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답을 재촉하고, 공개된 자리에서 해명을 요구하고, 이미 답한 질문을 의심의 형식으로 반복하는 일이 그렇다. "왜 그것도 못 하느냐"는 말은 문제 해결보다 사람의 가치를 공격한다. 상대가 침묵하면 더 세게 밀어붙이는 태도도 위험하다. 침묵은 동의일 수도 있지만 두려움이나 피로의 표시일 수도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할 장소와 때, 상대가 감당할 여유까지 살펴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그렇다고 갈등을 피하려고 모든 문제를 덮어서는 안 된다. 눌러 둔 문제도 다른 종류의 압력이 된다.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니라 자극 없는 직면이다. 관찰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고, 사람 전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말하며, 답할 시간을 주는 방식이다. "당신은 늘 그렇다" 대신 "이 결정이 두 번 바뀌었고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쟁점이 선명해진다. 진실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비틀지 않는 말이 가능하다.

다툼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 잠언 30장 32-33절 묵상 본문 이미지

공동체의 지도자는 특히 압력의 방향을 살펴야 한다. 직책이 높은 사람의 가벼운 한마디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무거운 명령으로 들릴 수 있다. 농담을 받아 주지 않았다고 불이익이 생기거나, 질문을 충성심 부족으로 해석한다면 겉으로 조용해도 평화로운 공동체는 아니다. 소리가 없다는 사실과 압력이 없다는 사실은 다르다. 건강한 질서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견을 말할 수 있을 때 확인된다.

압력을 낮추는 책임은 약한 사람에게만 요구되어서도 안 된다. 흔히 갈등이 생기면 상처 입은 사람에게 더 너그러워지라고 권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라고 말한다. 그러나 힘을 가진 사람이 자기 방식은 그대로 둔 채 상대의 인내만 요구한다면 평화라는 말이 또 하나의 압력이 된다. 먼저 멈추어야 할 사람은 더 큰 힘으로 젓고 비틀 수 있는 사람이다.

또한 사과는 결과만 유감스러워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의 반응만 문제로 남길 수 있다. 무엇을 반복했고 어떤 선택권을 빼앗았는지 구체적으로 인정할 때 압력의 원인이 드러난다. 회복은 감정을 빨리 가라앉히는 작업이 아니라 같은 자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말과 절차를 바꾸는 일이다. 진실한 사과에는 다음 장면을 다르게 만들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다. 예수님이 제단 앞에서도 이 일을 앞세우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에 떠오른 갈등을 그냥 두지 말라는 말씀이다. 바울이 말하듯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는 책임은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몫에서 시작된다.


다툼 직전이 아니라 그 이전을 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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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시작된 뒤 입을 막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지혜로운 일은 다툼을 준비하는 압력을 미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 말이 상대의 코를 비트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는지, 같은 요구를 이름만 바꾸어 계속 밀어붙이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관계를 지키는 사람은 폭발의 순간에만 온순한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 상대를 몰아세우지 않고, 설명의 공간을 남기며, 자신의 확신에도 질문을 허락하는 사람이다.

오늘 한 번 덜 재촉하고, 한 문장 덜 단정하며, 한 사람의 말을 조금 더 끝까지 들어 보자. 그리고 갈등이 생겼다면 마지막 말만 재판하지 말고 그 말에 이르기까지 쌓인 압력을 함께 살피자. 책임은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정확해질 것이다.

다툼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 잠언 30장 32-33절 묵상 본문 이미지

다툼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화도 갑자기 오기를 기다릴 수 없다. 평화는 서로를 누르지 않는 작은 절제 속에서 오래 준비된다.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이 그 모양을 그린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주님, 제 말이 누군가의 코를 비트는 힘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높아진 마음을 먼저 보게 하시고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지 않게 하옵소서.
작은 자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고
오늘 한 번 덜 재촉하며 끝까지 듣게 하옵소서. 아멘.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요즘 내가 같은 말이나 같은 요구를 이름만 바꾸어 반복하고 있는 상대가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쌓였을 압력은 어떤 모양일까요?

최근 화가 났을 때 내 마음이 먼저 '높은 자리'를 골랐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그때 손으로 입을 막는 대신 내가 할 수 있었던 작은 멈춤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서 힘 있는 사람이 먼저 멈추어야 할 자극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해 본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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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힘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 잠언 31장 묵상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7322725

설교 | 비전보다 먼저 들려야 할 말씀 (잠언 29:18)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7634805

참고 자료

성경: 개역개정 잠 15:1·18, 17:14, 18:13·17, 26:20-21, 29:22, 30:1-6·32-33, 마 5:23-24, 마 18:15, 롬 12:18, 약 1:19-20, 엡 4:26-27·29·32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0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