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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시계에는 끝이 적혀 있다 | 예레미야 25장 묵상

권력의 시계에는 끝이 적혀 있다 | 예레미야 25장 묵상 본문 이미지

힘이 센 쪽에 서 있으면 그 힘이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그렇다. 한 사람이 오래 자리를 지키면 사람들은 어느새 그 사람 없는 풍경을 상상하지 못한다. 반대로 눌려 사는 쪽은 이 상태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다. 권력은 자기 시계가 멈추지 않는 것처럼 행세하고, 눌린 사람은 그 말을 반쯤 믿는다.

예레미야 25장은 그 착각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한 제국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 제국이 일어서는 이유와 물러서는 때를 함께 적어 두신다. 이 글은 그 시계를 읽어 보려는 시도다. 권력을 쥔 사람에게는 경고로, 눌려 사는 사람에게는 위로로 읽히되, 어느 쪽이든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글이면 좋겠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종이면서 심판받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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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5장은 요시야 왕 열세째 해부터 이십삼 년 동안 선지자가 쉬지 않고 말씀을 전했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런데도 백성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말씀의 방향이 바뀐다. 하나님은 북쪽의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이 땅을 치게 하겠다고 하신다(렘 25:9).

여기서 눈이 멈추는 말이 '내 종'이다. 이방 제국의 왕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린다. 그가 하나님을 알아서가 아니다. 그의 군대가 하나님의 심판이 움직이는 길이 되었다는 뜻이다. 권력은 스스로 선 것처럼 보이지만, 말씀 안에서는 쓰임을 받은 도구로 기록된다.

이 사실을 빼놓으면 이 장은 반쪽만 읽힌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쓰시면서도 바벨론의 죄를 눈감아 주지 않으신다. 70년이 차면 바벨론 왕과 그 나라를 벌하시겠다는 말씀이 바로 이어진다(렘 25:12).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 옳다는 증명서가 되지 않는다. 도구가 자기를 주인으로 착각하는 순간 그 도구의 시간이 세어지기 시작한다.

교회 생활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어떤 직분이나 위치가 한동안 큰 열매를 맺으면, 맡은 사람이 그 열매를 자기 능력의 증거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맡겨진 힘은 맡기신 분의 시계 위에 놓여 있다.

잔이 열방을 돌고 마지막에 바벨론에게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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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의 중간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손에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아 여러 나라에 마시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렘 25:15-18). 예루살렘과 유다가 먼저 나오고, 이집트와 블레셋, 에돔과 모압, 두로와 시돈 같은 이웃 나라들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 읽다 보면 이름이 길게 이어져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이다.

그런데 이 긴 목록에는 순서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에서 먼저 재앙이 시작된다고 하신다.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렘 25:29). 베드로도 같은 결을 말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심판은 남의 집 이야기로 시작되지 않는다. 믿는 사람의 집에서 먼저 불이 켜진다.

잔은 그렇게 열방을 돌고, 목록의 끝에 이르러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렘 25:26). 세삭은 바벨론을 가리키는 암호 같은 이름이다. 나중에 예레미야 51장 41절이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라고 풀어 주기 때문에 이 이름이 바벨론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니까 모든 나라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제국도 잔의 순서에서는 마지막일 뿐 면제되지 않았다.

제국이 가장 높아 보일 때 하나님의 장부에는 이미 그다음 줄이 적혀 있었다. 권력의 시계에는 끝이 적혀 있다는 말은 그래서 비유가 아니라 본문의 순서 그대로다.


세 세대의 기한, 그리고 세어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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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7장 7절은 이 시계의 눈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바벨론의 시대가 영원이 아니라 세 세대쯤의 길이라는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들은 포로들에게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노인이 될 만큼의 시간이다. 그래도 끝은 적혀 있었다.

이 말씀은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눌려 사는 쪽에는 이 상태가 끝이 아니라는 소식이 된다. 그러나 그 소식이 곧바로 오늘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예레미야는 포로들에게 그 땅에서 집을 짓고 살며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도 편지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견디는 동안의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절망하지 말라는 말이다.

힘을 쥔 쪽에는 같은 말씀이 전혀 다른 소리로 들린다.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 왕의 잔치 한가운데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자를 쓴다. 다니엘의 풀이는 이렇다. 메네는 하나님이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끝나게 하셨다는 뜻이고, 데겔은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날 밤 왕은 죽임을 당했다. 25장이 약속한 끝이 아주 구체적인 밤에 도착한 장면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이 나라의 시대는 사람들의 여론이나 군사력의 균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어진' 것이다. 세는 분이 계시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권력의 끝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다만 성경은 그 원인과 결과 위에 시계를 쥐고 계신 분을 한 겹 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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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시계를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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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어떤 마음으로 무너졌는지는 다니엘 4장에 적혀 있다. 왕궁 지붕을 거닐던 그는 이 큰 바벨론이 내 능력과 내 영광을 위해 내가 세운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단 4:30). 말이 입에서 떠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오고, 왕은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산다. 그러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총명이 돌아왔다고 한다(단 4:34). 하나님이 때를 바꾸시고 왕을 폐하기도 세우기도 하신다는 말씀은 다니엘 2장 21절에도 나온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속마음을 이렇게 짚는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다(합 1:11). 힘이 신이 되면 시계는 보이지 않게 된다. 내 힘이 끝날 때를 계산하는 일은 신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만은 크기의 문제라기보다 시계를 보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높은 자리에 있어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끝을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을 때 사람이 교만해진다.

그렇다면 신자는 권력을 가질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로마서 13장은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그 권세가 선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고 말한다. 위임이라는 말이 핵심이다. 위임받은 사람은 맡긴 분 앞에 보고할 날이 있다. 그래서 직분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첫 일은 자기 임기를 인정하는 일이다. 은퇴 날짜를 달력에서 지우지 않는 일, 후임을 키우는 일, 내가 없어도 굴러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모두 같은 신앙 고백이다.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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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려 사는 사람에게 남는 것

시계가 권력자에게는 경고라면, 오래 눌려 지낸 사람에게는 다른 메시지를 준다.

시편 75편 6-7절은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광야에서도 오지 않고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신다고 말한다. 이 말은 눌려 사는 사람에게 복수를 허락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내 손으로 시계를 앞당기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문장이다. 재판장이 따로 계시니, 나는 재판장의 자리를 탐내지 않고도 정직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고 불의를 묵인하라는 뜻도 아니다. 미가는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미 6:8). 끝이 정해져 있다는 믿음은 오늘의 정의를 포기하는 핑계가 아니라, 정의를 행하는 동안 지치지 않게 하는 근거다. 이길 수 있을지 계산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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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해 볼 만한 일

글의 결론을 거창하게 맺고 싶지는 않다.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작은 일 몇 가지만 적는다.

권력을 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내가 맡은 일의 임기와 인수인계 시기를 스스로 적어 보자.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다음 사람이 설 수 있도록 하나를 맡겨 보자. 오래 눌려 지낸 분이라면 오늘 내 몫의 정직한 일 하나를 하고, 끝을 하나님께 맡겨 보자. 어느 쪽이든 시계를 하나님 손에 돌려 드리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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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의 시계에는 끝이 적혀 있다. 그 시계를 쥔 분이 따로 계시다는 사실이, 높은 사람에게는 겸손의 이유가 되고 낮은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유가 된다.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0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