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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AI 영적 조언 신뢰 | 바나 조사로 본 목회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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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들은 주일 아침마다 원고를 마지막으로 넘겨 본다.

그런데 올해 읽은 조사 하나가 그 손길을 자꾸 붙잡는다. 미국의 조사 기관 바나(Barna)가 올해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48%가 영적 성장에 관해서도 AI를 신뢰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개신교 목회자의 응답은 12%였다. 한 조사 안에서 회중석과 강단이 이만큼 벌어져 있다.

이 글은 그 숫자들을 정리하고, 숫자 뒤에 있는 마음을 읽어 보려는 시도다. 미리 밝혀 둘 점이 있다. 아래 수치는 미국 조사이고, 한국 사정은 목회데이터연구소의 별도 조사로 따로 살핀다. 두 나라의 응답을 한 줄에 놓고 비교하지 않는다. 또 설교 현장에서 오간 몇몇 발언은 출처를 확인하지 못해 뺐다. 확인된 자료만으로 쓴다.


숫자가 말하는 것: 기대와 불안이 한 사람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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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는 2025년 11월 미국 성인 1,514명, 12월 개신교 목회자 442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했고 결과를 2026년 5월 19일에 발표했다. 핵심만 간추리면 이렇다.

신앙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의 48%가 영적 성장에 AI를 신뢰하겠다고 답했다. 보고서가 응답 보기를 따로 풀어 적지 않았으므로 48%를 완전한 신뢰로 읽으면 과장이 될 수 있다. 미국 성인 전체에서는 30%가 AI의 영적 조언이 목회자의 조언만큼 믿을 만하다는 데 동의했다. 신앙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34%가 동의하고 60%가 동의하지 않았다. 젊을수록 비율이 올라가 Z세대는 39%, 밀레니얼은 44%였다.

그런데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걱정도 한다. AI가 성경을 잘못 해석할까 봐 83%가 걱정했고, AI가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의 자리를 대신할까 봐 72%가 걱정했다.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걱정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니라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바나의 연구 책임자가 이 대목을 두고 "정말 갈피를 잡기 어려운 자료"라고 말했다. 기대고 싶지만 불안하고, 불안한데도 기댄다. 회중석의 정직한 얼굴은 아마 이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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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쪽도 단순하지 않다. 목회자의 12%만 영적 성장에 AI를 신뢰한다고 했고, AI가 성경을 잘못 해석할까 걱정하는 비율은 94%에 달했다. 목회자가 성도보다 더 크게 걱정하는 항목도 있다. 반대로 AI가 목회자의 자리를 대신할까 하는 걱정은 63%로 성도(72%)보다 낮았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AI를 경계한다는 오해가 있는데, 숫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성경이 잘못 읽히는 일이다.

목회자도 이미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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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가 2026년 6월 15일 발표한 목회자 조사를 보면 현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미국 목회자 가운데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비율은 13%에 그쳤다. 설교를 쓰거나 다듬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응답은 24%였다. 바나는 2024년 초 조사에서 12%가 설교에 AI를 쓰는 데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했던 점을 함께 적으면서도, 편안함과 실제 사용은 다른 질문이라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71%는 AI에 신중한 마음을, 40%는 갈등하는 마음을 느낀다고 했다. 쓰면서 머뭇거리는 것이 지금 목회자의 상태다.

한국도 비슷한 방향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목회자의 AI 사용 실태」(2026년 4월 보도)는 설교 사역에 AI를 활용하는 목회자가 2023년 17%에서 2025년 58%로 늘었다고 전한다. 같은 보도에서 목회자의 81%가 성도의 신앙 수준과 필요에 맞춘 'AI 맞춤형 신앙 서비스'를 도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별도 조사에서 성도의 65%는 AI가 쓴 설교문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이 조사들은 질문 방식과 대상이 달라 미국 수치와 나란히 세울 수 없다. 다만 목회자는 쓰는 쪽으로, 성도는 설교만큼은 사람의 몫으로 보는 쪽으로 기운다는 큰 방향은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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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간격에서 무엇을 읽을까. 성도가 AI에게 영혼의 문제를 묻는 것은 호기심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 새벽 한 시에, 가족이 깰까 봐,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싶어서, 물어볼 사람이 곁에 없어서 묻는 경우가 많다. 챗봇이 열리는 시간은 대개 목회자의 휴대전화가 꺼지는 시간과 겹친다. 이 사실을 세대 차이로만 설명하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친다. 성도가 챗봇을 열기 전에 우리를 떠올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는가.


신뢰는 대답이 아니라 시간 위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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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 2:8). 복음이 정보로만 건네지지 않았다. 목숨과 함께 건네졌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 앞 절에서는 자신을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르듯 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AI는 본문을 정확히 요약할 수 있고, 위로의 문장을 다정하게 써 줄 수도 있다. 그 문장이 틀렸을 때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 퇴원한 성도에게 이튿날 다시 전화하는 사람, 내 이름과 사정을 기억하는 사람의 대답에는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들어 있다. 예수께서 선한 목자와 삯꾼을 가르실 때 기준으로 삼으신 것도 말솜씨가 아니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하셨다(요 10:11-12). 그리고 선한 목자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사이라고 하셨다(요 10:14). 아는 것, 곁에 남는 것, 책임지는 것이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AI를 쓰는 일이 곧 삯꾼의 길이라는 뜻은 아니다. 목회자가 본문 배경을 찾거나 문장을 점검하는 데 도구를 쓰는 일과, 성도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도구에 맡기는 일은 다른 문제다. 앞의 것은 공개적으로 책임지며 쓸 수 있다. 뒤의 것은 처음부터 맡길 수 없다. 로마서 12장 15절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한다. 함께 운다는 일은 요약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벽 한 시의 질문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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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현실적인 일을 몇 가지 적어 본다. 거창한 시스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 목회자가 먼저 자기 사용 범위를 밝힌다. 설교 준비에서 무엇에 도구를 쓰고 무엇은 쓰지 않는지 성도에게 말해 주면 의심이 줄어든다. 숨기다가 드러나면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둘, AI에게 먼저 물었다고 말하는 성도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래서 뭐라고 하던가요?" 하고 되물으면 대화가 열린다. 나무라면 다음부터는 말하지 않고 혼자 묻는다. 챗봇의 대답이 성경 해석에서 틀렸다면 함께 본문을 펴서 확인하면 된다.

셋, 새벽에도 닿을 길을 하나 마련한다. 목회자가 밤새 대기할 수는 없다. 대신 교구 담당자, 기도 동역자, 지역의 위기 상담 연락처를 한 장 카드에 정리해 두고, 급한 일은 사람에게 연결되도록 안내한다. 생명과 관련된 위기라면 AI에게 맡기지 말고 곧바로 사람과 전문 기관에 연결해야 한다.

넷, 성도의 사정은 외부 AI에 입력하지 않는다. 상담 내용, 심방 기록, 교인의 건강과 가족 이야기는 어떤 도구에도 넣지 않는다는 선을 교회 안에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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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정확한 설교자가 아니라 더 가까운 목자

AI보다 더 정확한 설교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정확함은 기계가 더 빨리, 더 지치지 않고 내놓는다. 성도가 새벽에 챗봇을 열기 전에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실제로 전화를 받고 찾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 숫자들이 가리키는 목회자의 자리는 그쪽이다.

이번 주에는 교우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영적인 고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누구에게 묻느냐고. 대답이 "AI"라면 놀라지 말고 이유를 듣자. 그 이유 안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목양의 빈자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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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의식 논쟁과 목회 | 기계의 영혼을 묻는 사이 성도의 영혼은 누가 돌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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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Barna, 「Christians Trust AI for Flourishing, Spiritual Authority」, 2026-05-19 (barna.com/research/christians-trust-ai-flourishing-spiritual-authority)

Barna, 「New Research: Pastors Are Using AI More Than You Think」, 2026-06-15 (barna.com/research/pastors-using-ai)

목회데이터연구소 「목회자의 AI 사용 실태」, 뉴시스 2026-04-10 보도

개역개정 성경 (대한성서공회)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1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