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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예배당에, 마음은 문밖에 | 교회 출석 중고생 41%가 떠날 생각을 했다는 조사를 교회교육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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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교회학교가 줄었다는 말은 이제 누구도 놀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줄었으니 당연하다고 넘깁니다. 그런데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2023년 11월에 낸 주간 리포트 넘버즈 222호는 교육부 교육기본통계와 예장통합 교세통계를 같은 기간으로 맞추어 비교했습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열 해 동안 전국 초·중·고 학생은 653만 명에서 527만 명으로 19%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예장통합 교회학교 학생은 34만 명에서 21만 명으로 37% 줄었습니다. 감소 속도가 두 배입니다.

초등부만 떼어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일반 초등학생은 열 해 동안 4% 줄었는데, 교회 초등부는 36% 줄었습니다. 중고등부는 일반 중고생이 30% 줄 때 38% 줄었습니다. 학령인구가 거의 그대로였던 초등 연령대에서 교회 아이들만 셋 중 하나가 사라진 셈입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학교의 감소는 출생아 수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줄어든 속도보다 교회 아이들이 줄어든 속도가 훨씬 빠르다면, 그 차이만큼은 교회 안에서 생긴 일입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는 지난 10월 1일 데일리굿뉴스 칼럼에서 이 자료를 다시 꺼내며, 다음세대 문제는 아이들 수의 문제이기 전에 교회에 나오던 아이들이 신앙을 이어 가지 못하는 문제라고 썼습니다. 그는 2014년 예장통합 소속 교회 8,383곳 가운데 절반가량이 교회학교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교단 자료도 함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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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일

줄어든 숫자는 결과입니다. 교회교육이 정말 알아야 할 것은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올해 나온 조사가 그 과정을 꽤 자세히 보여 줍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사단법인 꿈이있는미래가 함께 낸 『한국교회 다음세대 트렌드 2026』은 올해 1월과 2월에 교회 출석 중고생 500명, 교회를 떠난 학생 200명, 학부모 600명, 교회학교 사역자 300명, 교사 435명을 조사한 자료입니다. 연구소는 그중 청소년 이탈에 관한 부분을 9월 8일 넘버즈 349호로 따로 정리해 냈습니다. 보고서는 이 현상에 "인비저블 엑시트", 눈에 보이지 않는 이탈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 나오는 중고생의 41%가 지난 한 해 동안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역자는 19%, 교사는 18%, 부모는 17%에 그쳤습니다. 출석부에는 이름이 있고 자리에도 앉아 있는데, 열 명 중 네 명은 이미 마음속으로 문을 반쯤 열어 둔 것이고, 어른들은 그 네 명 중 두 명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탈 이유를 보는 눈도 어긋나 있었습니다. 교사의 36%와 사역자의 35%는 학생이 떠나는 가장 큰 이유를 학업 부담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를 떠난 학생 200명에게 물었더니 1위는 "예배나 설교가 지루하고 의미가 없어서"로 38%였고, 학업 부담은 31%로 그다음이었습니다. 어른은 아이가 바빠서 못 온다고 생각했고, 아이는 거기서 들을 것이 없어서 나갔다고 답한 것입니다.

떠나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 실제로 교회를 그만두기까지 한 해가 걸리지 않았다는 응답이 74%였습니다. 떠난 시기는 더 일렀습니다. 이탈 학생의 55%가 초등학교 때 이미 교회를 떠났고, 중학교 입학 전까지로 넓히면 77%였습니다. 중고등부에서 보이는 빈자리는 사실 초등부 고학년 때 생긴 자리라는 뜻입니다.

가장 아픈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교회를 떠날 당시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학생이 74%였습니다. 고민을 털어놓은 경우에도 상대는 친구가 50%, 어머니 31%, 아버지 21%였고 교회 선생님은 15%였습니다. 떠나는 동안 사역자나 교사에게 전화든 메시지든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는 학생이 67%였고, 연락을 받은 학생의 절반은 그 내용이 "왜 안 나오느냐, 다음에는 나와라"였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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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쳤는데 왜 남지 않았을까

이 조사를 읽고 나서 저는 오래된 책 한 권을 다시 꺼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교육학자 존 웨스터호프가 1976년에 낸 『우리 아이들이 신앙을 가질 것인가(Will Our Children Have Faith?)』입니다. 우리말로는 『교회의 신앙교육』(정웅섭 옮김, 대한기독교교육협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웨스터호프가 던진 물음은 단순합니다. 교회는 왜 교육을 "학교"로만 생각하는가. 교실, 교재, 교사, 학년별 반 편성,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을 가르치는 방식. 그는 이것을 "학교식 교수 범례"라고 불렀습니다. 이 방식으로 아이들은 기독교에 관한 지식은 얻지만, 신앙 자체는 그렇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습니다. 대신 그는 "신앙 공동체 문화화 범례"를 제안했습니다. 신앙은 수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몸에 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신앙의 성장을 경험된 신앙, 소속의 신앙, 탐구하는 신앙, 자기 것이 된 신앙의 네 모습으로 나눈 것도 이 책에서입니다.

올해 조사와 이 오래된 책을 겹쳐 놓으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웨스터호프의 말로 하면 소속의 신앙에서 탐구하는 신앙으로 건너가는 때입니다. 의심이 생기고, 질문이 생기고, "이게 정말 내가 믿는 것인가"를 묻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 질문이 받아들여지는 공동체가 있으면 그 신앙은 자기 것이 되고, 질문할 데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조사에서 떠난 아이들의 74%가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고 답한 것은, 탐구하는 신앙의 문턱에서 혼자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설교가 의미 없다"는 말은 설교가 재미없다는 말이기보다, 내 질문과 이 말씀이 만나지 않는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학생들이 교회에 바라는 변화로 "신앙적 의문과 질문을 허용하는 분위기"(27%)와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신앙 분위기"(27%)를 꼽은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성경은 신앙 전수가 수업 시간에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신명기 6장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라고 합니다. 앉고, 걷고, 눕고, 일어나는 시간이 전부 가르치는 시간입니다. 시편 78편도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 78:4)라고 노래합니다. 전하는 내용은 교리 항목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 곧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전수가 끊어진 장면도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세대가 죽은 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한 세대 만에 끊어졌습니다. 학교가 없어서가 아니라, 행하신 일을 함께 본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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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사람에서 함께 걷는 사람으로

정재영 교수는 칼럼에서 교사의 역할이 "가르치는 사람"에서 "동행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도 보고서 결론에서 출석 관리와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일상을 함께 나누는 관계 중심 사역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 제안을 읽으면서 누가복음 24장이 떠올랐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서로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눅 24:15)라고 적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 하고 물으셨고, 두 사람이 자기 실망을 다 쏟아 놓을 때까지 들으셨습니다. 성경을 풀어 주신 것은 그다음입니다. 듣고, 걷고, 그 뒤에 말씀을 여셨습니다. 순서가 그렇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돌아보며 한 말도 같은 방향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살전 2:8). 복음만 준 것이 아니라 목숨, 곧 자기 삶을 함께 주었다는 말입니다. 보고서가 쓴 "삶을 공유하는 사역"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사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사에서 교사들은 자기 역량 가운데 "학생 관리 능력"과 "가르치는 능력"을 가장 약하게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회에 바란 1순위는 더 좋은 수업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친밀감"(39%)이었고, 떠나지 않은 이유 1위는 "부모와 가족이 함께 다녀서"(39%)였습니다. 교사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아이들이 떠난 것이 아닙니다. 아이 한 명의 이름과 고민을 아는 어른이 없어서 떠난 것입니다. 그 일은 교수법 훈련보다 자리를 바꾸는 데서 시작합니다. 교단 앞에서 아이들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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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

연구 결과를 현장으로 옮길 때 저는 큰 프로그램보다 작은 구조를 먼저 봅니다. 조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다섯 가지를 적어 봅니다.

첫째, 초등부 고학년에 눈을 둡니다. 이탈의 77%가 중학교 입학 전에 일어났습니다. 중고등부를 살리려면 5학년과 6학년 교사가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집안 사정과 요즘 고민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서를 올려 보낼 때 출석 명단만 넘기지 말고,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을 다음 교사에게 말로 넘기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결석이 아니라 침묵을 신호로 삼습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 1년 안에 74%가 떠났습니다. 그 1년은 대개 출석은 하는데 말수가 줄고, 예배 뒤에 바로 가고, 모임에 반응이 없는 시간입니다. 교사 모임에서 "요즘 조용해진 아이"를 한 명씩 말해 보는 것만으로도 조기 발견이 됩니다.

셋째, 연락의 내용을 바꿉니다. 연락을 받은 아이의 절반이 들은 말은 "왜 안 나오니, 다음엔 나와라"였습니다. 그 말은 출석을 확인하는 말이지 아이를 확인하는 말이 아닙니다. 첫 연락은 "요즘 어떻게 지내"로 충분합니다. 돌아오라는 말은 그다음입니다.

넷째, 질문이 혼나지 않는 자리를 하나 둡니다. 학생의 27%가 질문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바랐습니다. 공과 시간 끝에 "오늘 말씀에서 이해 안 되는 것 하나"를 적어 내게 하고, 다음 주에 교사가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탐구하는 신앙은 답을 빨리 주는 데서가 아니라 질문이 살아남는 데서 자랍니다.

다섯째, 설교가 월요일을 다루게 합니다. 떠난 아이들의 38%가 설교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입시, 친구, 부모와의 갈등, 외모, 진로, 신앙의 회의. 이 단어들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설교 본문 옆에 놓이면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었다고 느낍니다. 정재영 교수의 말대로 지루함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삶이 연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맺으며

통계는 차갑지만 그 뒤에는 한 명씩의 얼굴이 있습니다. 41%라는 숫자는 우리 교회 중고등부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떠날지 말지를 혼자 저울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그 고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웨스터호프가 반세기 전에 던진 물음은 "우리 아이들이 신앙을 가질 것인가"였습니다. 올해 조사는 그 물음을 이렇게 바꿔 묻습니다. 우리 아이들 곁에 그 아이의 질문을 들어 줄 사람이 있는가. 엠마오 길의 예수님처럼 먼저 묻고, 끝까지 듣고, 그 뒤에 말씀을 여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던 이탈은 비로소 눈에 보이는 대화가 됩니다. 교회교육의 과제는 거기서부터입니다.

참고 자료

· 성경 본문: 개역개정 신명기 6:4-9, 시편 78:1-8, 사사기 2:7-10, 누가복음 24:13-35, 데살로니가전서 2:7-8 (대한성서공회 사이트로 대조).

· 목회데이터연구소, 주간 리포트 넘버즈 222호 「기독 청소년 신앙의식」(2023년 11월 7일). 2013~2022년 학령인구(교육부 교육기본통계)와 예장통합 교회학교 학생 수 비교. 기독일보·미주중앙일보 2023년 11월 보도로 수치 확인.

· 목회데이터연구소·(사)꿈이있는미래, 『한국교회 다음세대 트렌드 2026』(2026년 7월) 및 넘버즈 349호 「인비저블 엑시트: 청소년의 교회 이탈」(2026년 9월 8일). 데일리굿뉴스 2026년 9월 10일, 뉴스앤넷 「데이터로 읽는 한국교회」, 침례신문 2026년 7월 22일 보도로 수치 확인.

· 정재영, 「교회학교의 심각한 현실」, 데일리굿뉴스 칼럼, 2026년 10월 1일.

※ 이 글의 이미지는 AI로 제작한 삽화입니다. 실제 교회 공간을 촬영한 사진이 아닙니다.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1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