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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갈등과 화해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찾아가는 일 (마 5:23-24)

교회 갈등과 화해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찾아가는 일 (마 5:23-24) 본문 이미지

교회 안에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먼저 부끄러워한다.

세대 사이의 의견 차이, 재정과 행정을 둘러싼 이견, 직분과 인정을 두고 남은 서운함 같은 일은 교회라면 없어야 할 일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덮어 두거나, 조용히 떠나거나, 어떻게든 이기려 한다. 한 번쯤 해 보았거나 곁에서 본 모습이다.

지난 9월 29일(현지 시간) 미국 남가주 한길교회에서 '2026 미주 피스메이커 목회자 세미나'가 열렸다.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와 CTS 아메리카가 주관하고 한길교회가 후원한 자리였고, 이철 목사와 여삼열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10월 7일 기독일보 보도를 읽다가 눈이 오래 머문 대목이 있다. 여삼열 목사가 갈등을 목회의 실패로 보지 않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죄인들이 모여 성숙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설명했다는 부분이다.

이 글은 그 보도에서 확인되는 내용을 중심으로, 갈등 앞에서 교회가 취할 수 있는 길을 성경 본문과 함께 다시 생각해 본 글이다. 보도의 모든 문장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고, 세미나에 없던 내용은 내 생각이라고 따로 밝혔다.


갈등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교회 갈등과 화해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찾아가는 일 (마 5:23-24) 본문 이미지

보도에 따르면 이철 목사는 갈등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회피, 공격, 화해다. 회피는 갈등을 피해 교회나 직장을 떠나는 것이다. 공격은 욕설이나 폭력, 경제적 압박, 소송 같은 방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가 화해다. 서로 잘못을 덮어 주고 관계를 회복하며 대화와 조정과 중재로 풀어 가는 길이다.

이 세 가지는 낯선 이론이 아니다. 주방 정리를 두고 언성이 높아진 뒤 한 사람이 다음 주부터 조용히 다른 예배에 가 앉는다면 회피다. 회의에서 표결로 상대 의견을 눌러 놓고 "결정된 일 아니냐"고 하는 일이 반복되면 공격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겉으로는 갈등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눌린 사람은 조용하다. 하지만 마음속 불편은 그대로 남아 다음 갈등의 재료가 되기 쉽다.

그래서 갈등을 없애야 할 사고로만 보면 오히려 갈등이 깊어진다.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졌어도 살아온 배경과 기대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의견이 부딪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함께 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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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에는 순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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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는 성경이 가르치는 화해의 길을 네 가지 원리로 정리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 가서 화해하라. 이 틀은 피스메이커 사역을 널리 알린 켄 샌디(Ken Sande)가 『The Peacemaker』에서 '네 가지 G'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글에서는 각 항목을 성경 본문과 대조해 살폈다.

첫 번째는 동기다. 갈등을 풀려는 이유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있으면 이미 길이 어긋난다.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다. 갈등을 푸는 일도 그 '무엇을 하든지'에 들어간다.

두 번째가 들보다. 예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꾸짖으셨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순서다. 상대를 바로잡는 일이 세 번째에 오고, 그 앞에 나를 살피는 일이 먼저 온다. 상대의 티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내 들보를 빼고 나야 상대의 티가 제대로 보인다는 말이다.

세 번째가 바로잡는 일이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온유하게, 그리고 나 자신도 살피면서. 바로잡음은 이기는 일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절차도 같은 결이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과 함께 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셨다(마 18:15-17). 먼저 둘이서, 그다음에 조금 넓게, 마지막에 공동체로 간다. 광고하듯 퍼뜨리는 길이 아니다.

네 번째가 실제로 찾아가는 일이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따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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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말이 기도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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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이철 목사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솔직하게 나눴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약 10년이 지난 뒤 갈등이 깊어졌고, 아내가 교인들도 힘들어한다고 말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 뒤 한 권사의 반응을 듣고서 기도를 바꾸었다. 아내의 마음을 바꿔 달라던 기도가 "나를 알게 해 주십시오"로 달라졌고, 이후 목회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 고백에서 마음에 남는 것은 기도의 방향이다. 갈등 속에서 우리는 대개 상대를 바꿔 달라고 기도한다. 틀린 기도는 아니지만, 그 기도만 반복하면 내 자리는 늘 안전하다. 기도가 "나를 보게 해 주십시오"로 바뀌는 순간 들보를 빼는 일이 시작된다. 마태복음 7장의 순서가 한 사람의 기도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라

교회 갈등과 화해 |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찾아가는 일 (마 5:23-24) 본문 이미지

이 모든 순서의 끝에 예수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눈여겨볼 만한 점은 이 말씀의 무게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와 관계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예물은 가장 거룩한 자리에서 드리는 것인데, 그 예물을 두고 걸음을 돌려 형제를 만나라고 하신다. 먼저 가서, 그리고 그 후에 와서. 예배는 도망칠 곳이 아니라 관계가 정리된 뒤에 더 온전히 드리는 자리가 된다.

보도에 따르면 이철 목사는 이 말씀을 추석 비유로 풀었다. 부모가 좋아할 선물을 들고 모인 형제자매가 서로 외면하고 다투다 돌아가면, 부모의 마음은 선물보다 자녀들의 화목에 가 있다는 것이다. 주일마다 정성껏 예배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비유다.

여기서 한 가지는 덧붙여 두어야겠다. 이 말씀은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사람'이 먼저 가라는 말씀이다. 남이 내게 잘못했으니 그 사람이 먼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걸린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걸음을 옮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모든 갈등이 이 길로 풀리지는 않는다. 학대나 폭력처럼 한쪽이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는 화해보다 보호가 먼저다. 그런 자리에서 "먼저 가서 화목하라"는 말을 피해자에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 경우에는 안전을 확보하고 전문 기관과 교회 지도자가 함께 개입해야 한다.


화평과 거룩함 사이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고 썼다. 거룩함과 화평함이 나란히 놓여 있다. 우리는 거룩함에는 목숨을 걸면서 화평함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기 쉽다. 진리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평화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진리를 흐리는 것도 복음의 길이 아니다.

로마서 12장 18절은 현실을 정직하게 말한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할 수 있거든, 그리고 너희로서는. 화목은 내 몫을 다하는 일이지 상대의 반응까지 책임지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찾아갔는데도 상대가 문을 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몫을 다했는지 점검하고, 기도로 문을 열어 두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한다.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미 주신 것이고, 우리의 몫은 그것을 지키는 일이다. 바로 앞 절은 그 방법으로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말한다(엡 4:2). 화해는 좋은 기술 이전에 겸손과 오래 참음의 문제다.


갈등이 터지기 전에 하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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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서 마지막으로 짚을 것은 훈련이다. 여삼열 목사는 갈등이 생긴 뒤에야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신앙훈련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교회 안에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할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행사를 후원한 한길교회는 세미나에 앞서 성도를 대상으로 피스메이커 10주 과정을 진행했는데, 많은 성도가 참여했고 특히 젊은 세대의 관심이 컸다고 보도는 전한다. 이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효과는 보도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만 적는다.

우리 교회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이런 것이다. 아래는 세미나 내용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

먼저, 회의에서 의견이 갈릴 때 쓸 말의 규칙을 미리 정해 둔다. 결정을 두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상대가 한 말을 먼저 한 번 되풀이한 뒤 내 의견을 말한다. 이런 작은 습관은 갈등이 없을 때 연습해야 갈등이 있을 때 쓸 수 있다.

다음으로, 양쪽 모두에게 신뢰받는 사람을 한두 명 세워 둔다. 직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이 맞다. 그 사람이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지도록 곁에 앉는 역할이다.

그리고 갈등이 있었던 일을 기록해 두고 다음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참고한다. 다만 이때에도 개인의 사정이나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는 적지 않는다. 일의 경위와 배운 점만 남긴다.


이번 주일에는

우리 교회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을 실패의 증거로만 볼 것인가, 성숙으로 가는 길목으로 볼 것인가. 화평케 하는 사람은 갈등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 한가운데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이번 주일에는 예물을 잠시 제단 앞에 내려놓고 조용히 물어보면 좋겠다. 내가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먼저 걸음을 옮겨야 할 사람이 있는가. 거창한 화해의 자리가 아니어도 된다. 안부를 묻는 한 통의 전화, 지난 회의에서 했던 말에 대한 짧은 사과면 충분할 때가 있다. 그 한 걸음이 예배를 더 온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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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 잠언 30장 32-33절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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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기독일보, 「미주 피스메이커 목회자 세미나 "화평, 일상에서 훈련해야"」, 2026-10-07 (christiandaily.co.kr/news/165078)

Ken Sande, 『The Peacemaker: A Biblical Guide to Resolving Personal Conflict』

개역개정 성경 (대한성서공회)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10. 11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