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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본 문화 단상 1]
AI를 처음 목회 책상에 올려놓던 날

1. 처음 AI를 사용하던 밤

처음 ChatGPT를 열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늦은 밤이었습니다.
주일 설교 본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머릿속에는 몇 개의 단어들이 떠돌고 있었지만,

그것이 문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듯 성경을 펼쳐 놓고 한참을 머물렀지만,

그날따라 생각은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커피는 식어 있었고, 창밖은 조용했으며,

책상 위에는 펼쳐진 주석서 두 권과 메모지 한 장이 있었습니다.

메모지에는 단어 세 개만 적혀 있었습니다.

설교의 방향을 잡기엔 너무 적었고, 버리기엔 아까운, 그런 단어들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화면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붙여 넣고 짧게 물었습니다.

“이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있어. 핵심 질문이 무엇일까?”

몇 초 뒤, 문장이 나타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답이 특별히 깊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제가 알고 있던 방향이었고,

신학적으로 새로운 통찰을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막연하게 떠다니던 생각들이 화면 위에 문장으로 나타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흐릿한 감각이 아니라
제가 다시 붙들고, 다시 묻고, 다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것들이 윤곽을 얻었습니다.

그 경험은 묘했습니다.

처음 AI를 사용하던 밤(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처음 AI를 사용하던 밤(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어쩌면 저는 그날,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질문을 얻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앙적, 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 조명에 가까운 경험이었습니다.

새로운 빛이 비춘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움베르토 에코(1932년 1월 5일~2016년 2월 19일)는 이탈리아의 소설가, 철학자, 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로, 포스트모던 사유와 대중문화 비평을 연결한 대표적 지식인이다. 1980년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기호학과 해석학 연구를 통해 현대 인문학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움베르토 에코(1932년 1월 5일~2016년 2월 19일)는 이탈리아의 소설가, 철학자, 기호학자이자 중세학자로, 포스트모던 사유와 대중문화 비평을 연결한 대표적 지식인이다. 1980년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기호학과 해석학 연구를 통해 현대 인문학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는 『The Name of the Rose -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을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합니다.

에코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진리’와 ‘해석’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 에코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진리’와 ‘해석’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그곳에서 수도사들은 책을 그저 복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 줄 한 줄을 베끼며, 주석을 달고,

때로는 앞선 텍스트와 논쟁하며 지식을 이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입니다.

책을 ‘필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텍스트를 몸으로 통과시키는 사유의 행위였습니다.

손으로 옮겨 적는 그 느린 반복 속에서,
텍스트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내면으로 스며드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책은 물건이 아니라 사건이었고,
필사하는 손은 곧 생각하는 손이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 필사실 장면(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움베르토 에코 / 필사실 장면(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설교를 준비하는 방식도 어떤 의미에서는 필사와 닮아 있습니다.

본문을 소리 내어 읽고, 원어를 한 글자씩 짚고, 주석서를 펼쳐 선배 신학자들의 해석과 씨름하고, 기도하며 다시 본문 앞에 서는 과정.

그것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닙니다. 말씀을 몸으로 통과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AI는 그 과정을 어디서 어떻게 바꾸는 것일까요.

저는 그날 밤 이후로 이 질문을 오랫동안 붙들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2. 도구가 바뀌면 사유도 바뀐다

도구가 바뀌면,
사유의 방식도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지 책을 빠르게 찍어내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독일어: Johannes Gutenberg, 본명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쉬 츠어 라덴 쭘 구텐베르크, 약 1398~1468)는 독일의 발명가이자 인쇄인으로, 서구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기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의 발명은 인쇄 혁명을 일으켜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의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작은 1455년경 완성된 구텐베르크 성서(42행 성서)이다.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독일어: Johannes Gutenberg, 본명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쉬 츠어 라덴 쭘 구텐베르크, 약 1398~1468)는 독일의 발명가이자 인쇄인으로, 서구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기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의 발명은 인쇄 혁명을 일으켜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의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작은 1455년경 완성된 구텐베르크 성서(42행 성서)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지식의 독점 구조를 무너뜨렸고,
성경을 개인의 손으로 옮겨놓았으며,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논제를 붙이던 시대,

그의 글이 몇 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논리가 강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활자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개혁(마틴 루터)
▲ 종교개혁(마틴 루터)

도구는 내용을 바꾸기 전에
먼저 사람을 바꿉니다.

읽는 방식을 바꾸고,
생각하는 속도를 바꾸고,
질문하는 방향을 바꿉니다.

성경이 라틴어에서 모국어로 옮겨지는 순간,

신자들이 텍스트와 맺는 관계 자체가 달라졌듯이,

어떤 도구로 말씀을 다루느냐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밤의 경험이

단순한 편의의 발견이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AI라는 도구를 목회자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설교를 준비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집니다.

본문을 읽는 리듬이 달라지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달라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구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디에서 막히고 있는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미 우리는
도구가 바뀐 시대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날로그 vs 디지털 전환(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아날로그 vs 디지털 전환(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3. AI 도구를 쓰며 발견한 것

그 이후로 저는 여러 도구들을 조금씩 사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ChatGPT로 초안을 잡고,
Claude와 본문을 놓고 대화를 이어가고,
Perplexity AI로 자료를 찾고,
NotebookLM으로 책과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나의 AI 글쓰기 워크플로우 - AI 툴 사용 (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나의 AI 글쓰기 워크플로우 - AI 툴 사용 (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각 도구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어떤 도구는 빠르게 정리해주었고,
어떤 도구는 질문을 확장시켰으며,
어떤 도구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도구를 잘 쓰는 날은 반드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도구의 성능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도구가 무용했던 날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화면을 열었고, 막연하게 질문을 던졌으며,

그럴듯한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디에도 쓸 수 없었습니다.

도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4. 질문이 막연하면 답도 막연하다

AI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질문이 막연하면 답도 막연합니다.

내가 이 본문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지금 이 공동체에 필요한 말씀이 무엇인지,
이 시대 속에서 복음이 어떤 언어로 들려야 하는지

그 질문을 먼저 붙들고 있어야
AI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계에 머물 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목회의 오래된 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설교를 준비하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는 있어도 말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내면의 물음 없이 AI를 사용하면 그럴듯한 구성이 나올 수는 있어도 설교가 되지 않습니다.

도구는 언제나 사람을 통과합니다. 

5. 목회의 본질과 새로운 질문

처음 AI를 책상에 올려놓던 날,

저는 새로운 편리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었습니다.

목회의 본질(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 목회의 본질(이해를 돕기 위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나는 지금

목회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나는 지금

누구를 향해 서 있는가.

어쩌면 이 질문이야말로

이 연재를 시작하게 만든 가장 깊은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I는 질문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를, 때로는 나보다 먼저 알아채줍니다.


6. 필자 소개와 원문

[ 필자소개 ]

손하람 목사 (분당한신교회 부목사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Th.D. 과정)
교육국·예배·문화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며, 목회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결국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본질을 붙들며 오늘의 문화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다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길을 묻습니다."

손하람 목사 : 디지털 명함 바로가기

AI와 함께하는 더 깊은 목회 홈페이지 : www.haram.ai.kr



원문 출처
올포워십 892호, 「AI로 본 문화 단상 1] AI를 처음 목회 책상에 올려놓던 날」, 손하람 목사, 기사입력 2026/04/2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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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칼럼 # 문화 단상 # AI와 목회 # 올포워십 # 도구와 사유
손
손하람 목사
분당한신교회 부목사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Th.D. 과정
기장 교단 내 AI목회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AI를 효율화 도구가 아닌 신학적 사유의 파트너로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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