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나눔

AI로 본 문화 단상 4]
Perplexity는 내 목회 사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바벨까지, 지식을 찾는 인간의 오랜 꿈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모습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모습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곳에 모으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입니다.

항구에 들어오는 모든 배를 수색해 책을 압수하고 필사한 뒤 돌려보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서를 통째로 사들였고, 각국의 학자들을 초청해 머물게 했습니다. 전성기에는 70만 권에 달하는 두루마리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도서관 앞에서 사람들은 곧 하나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책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사람이 있습니다.

칼리마코스. 시인이자 학자였던 그는 도서관의 모든 장서를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피나케스』라고 불리는 그 목록은 단순한 책의 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저자의 생애, 작품의 진위, 주제별 분류까지 담긴 일종의 지식 지도였습니다.

칼리마코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첫 번째 사서였습니다. 지식을 모은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찾을 수 있게 만든 사람.

Perplexity를 처음 제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Perplexity를 처음 제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고대 도서관의 학문적인 작업
▲ 고대 도서관의 학문적인 작업©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Perplexity가 그냥 검색 엔진의 변종 정도로 보였습니다. ChatGPT나 Claude처럼 긴 대화를 이어가는 도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글처럼 링크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도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설교 준비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Perplexity의 쓸모를 발견했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11장이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이 우셨다는 그 장면. 짧은 구절이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본문이었습니다. 신학적 주석은 충분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을 다룬 미술 작품이 있을까. 화가들은 이 순간을 어떻게 그렸을까.

사색하는 화가
▲ 사색하는 화가

구글에 검색하면 이미지들이 쏟아지겠지만, 저는 그 작품들의 맥락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시대의 화가가, 어떤 신학적 이해 위에서, 이 장면의 어떤 부분을 포착했는지. 그 흐름을 알고 싶었습니다.

Perplexity에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예수님의 눈물 장면을 그린 서양 미술 작품들과 그 신학적 해석을 알려줘.

답이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AI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주장 옆에 출처가 붙어 있었습니다. 논문인지, 미술관 자료인지, 신학 저널인지가 표시되어 있었고, 원한다면 바로 그 원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정리된 답이 아니라, 내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들이 함께 제공된 것입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Perplexity는 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지식의 지도를 그려주는 도구구나.

알렉산드리아와 바벨 사이

칼리마코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칼리마코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하였던 일들
▲ 칼리마코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하였던 일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이야기는 너무 단순합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41년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발표했습니다. 이 소설 속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와 정반대의 악몽입니다.

도서관은 무한합니다. 육각형 방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각 방에는 수많은 책이 꽂혀 있습니다. 그 책들은 알파벳의 모든 가능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담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문장도 있고, 무의미한 나열도 있습니다. 그 어딘가에 모든 진리가 담긴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한한 미로와 같은 도서관
▲ 무한한 미로와 같은 도서관

도서관 속 사람들은 평생 그 책을 찾아 헤맵니다. 찾지 못하면 절망하고, 어떤 이들은 찾았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보르헤스가 그린 것은 도서관이 아니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초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가 꼭 그렇습니다. 인터넷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신학 논문도 있고, 설교 자료도 있고, 원어 사전도 있고, 주석서 전문도 있습니다. 그런데 검색창을 열면 70만 개의 결과가 쏟아집니다.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합니다. 정보는 넘치는데 방향을 잃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꿈이 바벨의 현실이 된 것입니다.

사서는 안내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요즘 Perplexity를 사용하면서 한 가지를 의식하게 됩니다. 이 도구가 나를 바벨에서 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오래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 연재의 1회에서 잠깐 언급했던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입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그린 그곳에는 책을 관리하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관리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를 알았고, 어떤 책이 위험한지를 알았고, 어떤 책을 누구에게 내어주어야 하는지를 판단했습니다. 그는 지식의 문지기였습니다.

중세의 도서관의 모습
▲ 중세의 도서관의 모습

그런데 에코의 소설에서 그 문지기는 결국 비극적인 존재가 됩니다. 지식을 지키려는 욕망이 지식을 나누어야 하는 책임보다 커졌을 때, 그는 도서관과 함께 불탑니다.

사서는 지식을 안내해야 합니다. 통제하려 할 때, 그는 더 이상 사서가 아닙니다.

Perplexity를 쓰면서 저는 가끔 이 역할을 생각합니다. 이 도구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식을 안내해 줍니다. 그런데 그 안내가 내 질문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내가 묻는 방향으로만 지도가 펼쳐집니다. 내가 미처 묻지 않은 것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좋은 사서는 때로 내가 원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읽어야 할 책을 권해줍니다. Perplexity는 아직 그 일을 하지 못합니다.

목회자의 몫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도 Perplexity를 자주 씁니다.

설교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빠르게 확인할 때, 인용하려는 신학자의 발언이 어느 책 어느 문맥에서 나온 것인지 추적할 때, 특정 교회사적 사건의 흐름을 정리할 때. 그때마다 Perplexity는 꽤 믿음직한 조력자입니다. 빠르고, 출처가 있고, 내가 더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칼리마코스는 지식의 지도를 그렸지만, 그 지도가 곧 지식은 아니었습니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결국 책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중세 수도원의 사서는 문을 열어야 할 때 문을 닫았습니다.

도구는 언제나 사람을 통과합니다.

Perplexity가 내어주는 지식의 지도를 들고, 결국 어디로 걸어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어떤 출처 앞에 멈추고, 어떤 논문을 끝까지 읽고, 어떤 신학자의 언어를 설교 언어로 빚어내는가. 그 판단은 어떤 사서도, 어떤 AI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목회자와 성도가 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지식의 지도를 손에 들고,
말씀 앞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일.

필자소개

손하람 목사 (분당한신교회 부목사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Th.D. 과정)

교육국·예배·문화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며, 목회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결국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본질을 붙들며 오늘의 문화를 읽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을 넘어, 다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는 목회의 길을 묻습니다.”

손하람 목사 : 디지털 명함 바로가기

AI와 함께하는 더 깊은 목회 홈페이지 : www.haram.ai.kr

손하람 목사 저서와 AI목회 안내 이미지

손하람 목사 저서(EBOOK)

처음 시작하는 AI목회 초급편(목회현장에서 바로 쓰는)
작가와 / ISBN13: 9791143805195
이야기로 심고 질문으로 키우는 교회교육
하가다·하부르타·생애주기별 신앙교육 실천가이드 / 작가와 / ISBN13: 9791143803559
성도들이 감동하는 설교 이렇게 해라
본문에서 삶으로, 말씀에서 변화로 / 작가와 / ISBN13: 9791143807601
올포워십 914호, 「AI로 본 문화 단상 4] Perplexity는 내 목회 사서다」, 손하람 목사, 기사입력 2026/07/13 01:01.
올포워십 원문 보기
칼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