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칼럼 · 이사야 62장 · 손하람 목사
이 글의 흐름
01 파수꾼의 눈은 먼저 위를 향한다
02 쉬지 않는 기도는 쉼 없는 소란이 아니다
03 기도한 사람은 길의 돌을 치운다
04 새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가 되려면
05 결론 — 약속을 기억하며 한 돌을 치우는 오늘
기다림이 길어지면 사람은 대개 두 방향으로 기운다. 하나는 조급함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작은 변화라도 성공이라고 서둘러 이름 붙인다. 다른 하나는 체념이다.
오래 기도해도 형편이 달라지지 않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조급함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체념은 약속을 더는 신뢰하지 못한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둘 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간 앞에서 손을 놓는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이사야 62장은 폐허의 흔적이 남은 시온을 향해 전혀 다른 태도를 제시한다. 시온의 의와 구원이 밝히 드러날 때까지 잠잠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성벽 위에 세워진 파수꾼들에게도 쉬지 말라고 명한다. 이어 백성이 돌아올 길을 닦고 돌을 치우며 만민이 볼 기치를 들라고 한다.
이 흐름은 기다림을 막연한 정지 상태로 두지 않는다. 약속을 붙들고 아뢰는 일과 누군가 올 수 있도록 길을 정돈하는 일이 함께 간다.
본문 첫 절의 화자가 하나님인지 예언자인지는 해석이 갈리므로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어도 중심은 선명하다. 구원이 나타날 때까지 침묵과 쉼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기다림은 날짜를 계산하며 초조해하는 일이 아니고, 아무 변화도 기대하지 않은 채 현실에 적응하는 일도 아니다. 약속의 완성을 바라보며 오늘 맡겨진 말을 계속하고, 오늘 치울 수 있는 돌을 치우는 능동적인 인내다.
01
파수꾼의 눈은 먼저 위를 향한다

우리는 파수꾼이라고 하면 위험을 감시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역할도 성경의 다른 본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사야 62장에서 파수꾼에게 붙은 특별한 호칭은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이다.
성벽 위의 시선이 바깥의 적에게만 향하지 않고 하나님께 향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형편과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끊임없이 아뢰는 사람들이다. 지켜봄이 곧 중보가 되고, 깨어 있음이 곧 기도의 직무가 된다.
기도를 하나님이 모르시는 정보를 알려 드리는 보고로 여기면 이 표현은 낯설다.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 무엇을 기억하시게 한다는 말인가. 핵심은 하나님이 무엇을 잊으셨다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이 친히 약속을 근거로 자신께 간구하도록 자리를 내어 주셨다는 데 있다. 기도자는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협상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붙들고 그 성취를 구하도록 초대받은 사람이다. 끈질김의 근거도 우리의 절박함보다 그분의 약속에 있다.
이 차이는 기도의 태도를 바꾼다. 욕망이 중심에 서면 반복은 압박이 되지만, 약속이 중심에 서면 반복은 신뢰의 표현이 된다. 우리는 원하는 결론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승인만 요구할 수 없다.
본문이 정한 목표는 예루살렘이 세워지고 하나님께 찬송이 돌아가는 데 있다. 그러므로 쉬지 않는 기도는 내 계획의 관철이 아니라 공동체가 의와 구원을 드러내고, 상한 자리가 회복되며, 하나님의 이름이 바르게 알려지기를 구하는 일이어야 한다.
02
쉬지 않는 기도는 쉼 없는 소란이 아니다
‘쉬지 말라’는 명령을 들으면 우리는 더 많은 모임, 더 긴 시간, 더 강한 목소리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기도의 지속성은 소리의 크기나 피로의 양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밤낮으로 아뢴다는 것은 삶의 리듬 전체가 약속을 잊지 않는 방향으로 놓인다는 뜻이다. 정해진 시간에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성급한 확언보다 분별을 구하며, 지나간 요청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살피는 습관도 그 지속성에 포함된다.
오래 기도하려면 정직함도 필요하다. 희망적인 말만 반복하면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게 되고, 비관적인 소식만 나열하면 약속을 잃어버리게 된다. 파수꾼은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면서도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지금 무너진 것이 무엇인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우리가 책임져야 할 잘못은 무엇인지 숨기지 않는다. 동시에 실패를 공동체의 마지막 이름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기도는 현실을 축소하지 않고도 현실보다 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한다.
이런 기도에는 함께 견디는 질서가 필요하다. 몇 사람의 열정에 모든 부담을 맡기면 오래갈 수 없다. 어떤 이는 이름을 적어 기억하고, 어떤 이는 정기적으로 형편을 확인하며, 어떤 이는 말없이 곁을 지키고, 어떤 이는 필요한 일을 조직할 수 있다.
기도 제목을 모으는 것만큼 응답과 변화와 남은 과제를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다. 공동체의 기억이 쌓일 때 기도는 순간의 감정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돌봄의 호흡이 된다.
03
기도한 사람은 길의 돌을 치운다

본문은 성벽 위의 기도에서 멈추지 않고 성문 밖의 길로 독자를 보낸다. 백성이 올 길을 닦고 큰길을 수축하며 돌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길 자체를 창조하고 구원을 완성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는 일은 사람에게 맡겨진다.
이는 기도와 실천을 경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기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게 하고, 실천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교회 안의 ‘돌’은 언제나 거대한 악의 모습으로만 놓여 있지 않다. 처음 온 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안내, 도움을 청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구조, 익숙한 사람끼리만 통하는 말, 실수한 이를 오래 붙드는 낙인도 길을 막을 수 있다. 모두가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문턱은 높은 경우가 있다. 길을 닦는 일은 거창한 표어를 세우기 전에 누가 들어오다 멈추는지 살피고, 불필요한 장벽 하나를 구체적으로 낮추는 데서 시작된다.
기도한 뒤에 할 일을 찾는 습관을 들여 볼 수 있다. 화해를 위해 기도했다면 먼저 사실을 확인하고 안전하게 대화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했다면 그들의 질문을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들을 통로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지역을 위해 기도했다면 교회가 가진 공간과 시간과 기술이 이웃에게 어떤 방식으로 열릴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만든 돌을 은혜의 이름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04
새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가 되려면
이사야 62장에는 ‘버림받은 자’와 ‘황무지’라는 옛 이름을 대신하는 새 이름들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스스로 만들어 붙인 긍정 문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정해지는 언약의 선언이다. 장 끝에 나오는 이름들도 구속받았고, 찾아졌고, 버림받지 않았다는 수동의 문법을 품는다. 공동체의 새 정체성은 성취를 과시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찾으시고 관계를 회복하신 은혜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람에게 새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근거 없는 칭찬을 반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 사람을 그의 가장 나쁜 순간과 동일시하지 않고, 회개의 가능성과 회복의 길을 함께 지키는 것이다. 잘못을 모른 체하지 않되 잘못이 그 사람의 영원한 호칭이 되게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 있는 사람”, “늘 실패하는 부서”, “가망 없는 세대” 같은 말은 판단을 편하게 만들지만 길을 닫는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를 우리의 낙인이 밀어내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새 이름은 공동체의 운영 방식도 바꾼다. ‘찾은 바 된 자’를 말한다면 보이지 않는 이를 실제로 찾는 절차가 있어야 하고, ‘버림받지 않은 공동체’를 말한다면 실패하거나 지친 이가 다시 들어올 통로가 있어야 한다. ‘거룩한 백성’을 말한다면 체면을 지키는 침묵보다 진실과 책임을 선택해야 한다.
이름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다. 은혜로 받은 이름이기에 자랑할 수 없고, 은혜로 받은 이름이기에 그 이름에 어울리는 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05
결론 — 약속을 기억하며 한 돌을 치우는 오늘
이사야 62장의 순서는 단순하지만 깊다. 구원이 드러날 때까지 잠잠하지 않고, 성벽 위에서 약속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성문 밖으로 나가 백성이 올 길을 닦는다. 그리고 버림과 황무지의 이름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새 이름을 듣는다.
기도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말이 아니며, 실천은 기도 없이 자기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둘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바로잡는다. 기도는 행동이 조급한 자기 과시가 되지 않게 하고, 행동은 기도가 책임 없는 위안에 머물지 않게 한다.
오늘 공동체 전체를 바꿀 거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여 이름을 불러 기도하고, 설명 한 줄을 더 친절하게 고치며, 불필요한 문턱 하나를 낮출 수 있다. 응답이 더뎌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붙들고 다시 아뢸 수 있다.
오래 기다리는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다. 약속이 이루어질 방향을 바라보며 깨어 있고, 누군가 돌아올 길에서 오늘 치울 수 있는 돌 하나를 치우는 믿음이다.
손하람 목사 · 분당한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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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9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