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칼럼 · 전도서 9장 · 손하람 목사
이 글의 흐름
01 어두운 현실 한가운데 놓인 명령
02 받아 주심은 성취의 보상이 아니다
03 일상을 누리는 것도 믿음이다
04 공동체가 은혜의 순서를 지키려면
05 기쁨은 오늘의 응답이다
우리는 기쁨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맡은 일을 끝냈을 때, 누군가에게 쓸모를 증명했을 때, 마음에 걸리는 문제를 모두 정리했을 때에야 비로소 편히 웃어도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식탁 앞에서도 다음 일을 생각하고, 쉬는 동안에도 쉼의 대가를 미리 계산한다. 좋은 하루는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부지런함으로 획득해야 할 상처럼 변한다.
신앙 안에서도 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기도를 충분히 했는지, 봉사를 제대로 했는지, 어제보다 나아졌는지를 확인한 뒤에야 하나님 앞에서 안심하려 한다. 감사와 기쁨은 믿음의 열매라기보다 합격 통지 뒤에 허락되는 감정이 된다.
그러나 합격선을 정하는 사람도, 그 선을 넘었는지 판정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면 마음은 좀처럼 쉬지 못한다. 기준은 불안할수록 높아지고, 기쁨은 늘 다음 날로 미뤄진다.
01
어두운 현실 한가운데 놓인 명령
전도서 9장은 삶을 가볍게 낙관하지 않는다. 바르게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치고, 빠르거나 강하거나 지혜롭다는 사실이 원하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관찰한다. 사람은 자기 앞에 놓인 모든 사건의 뜻을 읽을 수 없다. 노력과 결과가 언제나 반듯하게 맞물리지 않는 현실을 전도자는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어두운 관찰 한가운데에서 방향이 바뀐다. 먹고 마시는 일, 몸을 단정히 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 손에 주어진 일을 힘써 하는 일이 명령의 모양으로 이어진다. 현실이 완벽해졌으니 즐거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죽음과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오늘의 밥상과 관계와 일을 외면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이 순서는 중요하다. 성경의 기쁨은 형편을 모르는 사람의 들뜸이 아니다. 오히려 형편을 정직하게 본 뒤에도 오늘을 받을 수 있는 태도다.
문제가 없다고 가장하는 낙관과 문제가 전부라고 단정하는 절망 사이에서, 전도자는 작고 구체적인 일상을 다시 가리킨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곳은 거창한 결론이 아니라 한 끼의 식사와 한 사람의 얼굴과 눈앞의 한 가지 일이기 때문이다.
02
받아 주심은 성취의 보상이 아니다

이 단락을 떠받치는 핵심은 하나님이 ‘벌써’ 기쁘게 받으셨다는 설명이다. 이 말에서 눈여겨볼 것은 시간의 순서다. 먼저 잘 살아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고, 그 보상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받아 주심이 앞에 있고, 먹고 사랑하고 일하는 삶이 그 뒤를 따른다. 명령보다 은혜가 먼저 놓인다.
우리는 이 순서를 자주 뒤집는다. 오늘의 성실함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남의 인정으로 자신이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하려 한다. 일이 잘되면 잠시 안도하지만, 실수하거나 반응이 적으면 삶 전체가 거절당한 듯 느낀다.
성취가 받아 주심의 근거가 되면 성취가 흔들릴 때 관계도 함께 흔들린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마음은 매일 새 성적표를 기다리게 된다.
은혜의 순서는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이 두려움의 노역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다. 받아들여지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실패를 숨기고 성과를 부풀리기 쉽다.
이미 받아 주신 은혜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배울 여유를 얻는다. 정직한 수정이 자기 존재를 무너뜨리는 판결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맡은 일을 더 바르게 하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받아 주심은 무책임한 자기 위안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허가가 아니라, 벌을 피하려는 조급함 대신 감사로 움직이게 하는 토대다. 사랑을 얻기 위한 노동과 사랑을 받은 사람의 노동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방향이 다르다. 하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받은 것을 오늘의 충실함으로 응답한다.
03
일상을 누리는 것도 믿음이다

먹고 마시는 일은 너무 평범해서 영적인 의미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전도서의 권면은 바로 그 평범함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바쁜 날 따뜻한 음식을 천천히 먹는 것,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몸을 돌보는 것, 가까운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오늘 맡은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인생의 본론을 방해하는 잡일이 아니다. 유한한 사람에게 허락된 삶의 자리다.
기쁨을 미루는 습관은 종종 책임감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쉬겠다고 말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면 마음을 놓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문제와 다음 기대는 계속 온다.
결국 우리는 기쁨을 성실함의 반대편에 놓고, 지친 상태를 충성의 증거처럼 여기게 된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을 헌신이라 부르면 오래지 않아 타인의 쉼까지 못마땅하게 보게 된다.
오늘의 몫을 누린다는 말은 가진 형편에 무조건 만족하라는 압박도 아니다. 부당한 현실은 고쳐야 하고, 상처는 돌봄을 받아야 하며, 잘못된 구조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다만 모든 것이 고쳐진 뒤에야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곁에서도 한 끼를 감사히 받고, 한 사람과 진실하게 대화하며, 작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일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는 믿음이다.
이 태도는 기쁨을 소비와도 구별한다. 마음이 허전할 때 더 많은 물건과 자극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잠시 감각을 바꿀 수 있지만, 오늘을 선물로 받게 하지는 못한다. 전도서가 가리키는 기쁨은 더 특별한 것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곁에 있는 밥상과 관계와 일을 알아보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기에 함부로 다루지 않는 데 가깝다.
04
공동체가 은혜의 순서를 지키려면
개인이 은혜를 믿어도 공동체의 운영이 계속 성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면 마음은 다시 불안해진다. 결과가 좋은 사람만 발언권을 얻고, 실수한 사람은 과정 전체를 설명할 기회도 없이 낙인찍히는 곳에서는 모두가 실패를 감추게 된다. 은혜를 말하는 공동체라면 평가를 없애기보다 평가가 사람의 존재를 삼키지 않도록 경계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결과와 존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어떤 계획은 실패할 수 있고 어떤 판단은 분명히 잘못될 수 있다. 그 사실을 정확히 말하는 것과 한 사람을 실패 자체로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
잘못에는 책임을 묻되, 사실을 말한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길을 남겨 두어야 한다. 수정할 기회가 있는 곳에서 보고는 정직해지고, 도움을 청하는 일도 수치가 되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는 보이는 성과뿐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수고를 인정해야 한다. 회의 전에 자료를 살핀 사람, 갈등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대화한 사람, 지친 동료의 일을 나눈 사람, 무리한 일정을 줄이자고 말한 사람의 기여는 숫자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수고가 사라지면 화려한 결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받아 주심의 언어는 작은 충실함을 볼 줄 아는 눈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지도자의 말도 달라져야 한다. 더 노력하면 인정받을 것이라는 압박보다, 이미 공동체의 귀한 구성원이기에 함께 더 나은 길을 찾자는 초대가 필요하다. 칭찬은 사람을 붙잡기 위한 미끼가 아니며, 비판은 관계에서 내쫓는 신호가 아니어야 한다. 소속이 성적에 달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사람은 방어를 조금 내려놓고 자신의 한계와 필요를 말할 수 있다.
05
기쁨은 오늘의 응답이다
받아 주심이 먼저라는 믿음은 아침의 속도를 바꾼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증명할 목록부터 펼치는 대신, 오늘이 먼저 주어졌음을 기억하게 한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있고 미룰 수 없는 책임도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사랑받기 위한 시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받은 하루에 응답하는 방식이 된다.
저녁의 질문도 달라진다.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냈는지만 묻지 않고, 오늘 주어진 것을 어떻게 받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식탁을 서둘러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가까운 사람을 과제처럼 대하지는 않았는지, 실수를 감추느라 진실을 밀어내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그리고 부족함을 발견해도 자신을 폐기하지 않고, 고칠 일을 기록한 뒤 쉼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기쁨은 모든 문제가 끝난 사람의 사치가 아니다. 하나님의 받아 주심이 자기 성취보다 앞선다는 사실에 대한 조용한 응답이다. 그러므로 오늘 웃고 먹고 사랑하고 일하는 것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은혜의 순서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일의 합격을 기다리느라 오늘을 유예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사랑 안에서 오늘의 몫을 정성껏 사는 것, 거기서 기쁨은 비로소 의무가 아니라 열매가 된다.
손하람 목사 · 분당한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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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9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