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나눔

교단 AI 목회 가이드라인 정리 | 예장합동·기장 총회가 그은 책임의 선

AI는 이미 목회실에 있다 — 남은 질문은 책임이다 본문 이미지

지난주 한국 교회 총회 뉴스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온 숫자가 있다.

예장합동 제111회 총회 셋째 날, 정책총괄본부가 제안한 '인공지능 윤리 및 신앙 활용 가이드라인'이 채택됐다. 그 배경에 놓인 실태조사가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담임목회자 88.7%가 이미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

'쓸까 말까'를 논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설교 준비와 목회 행정 한가운데 AI가 들어와 있다.


현장이 찾는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AI는 이미 목회실에 있다 — 남은 질문은 책임이다 본문 이미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 것은 신학적 오류와 부정확한 정보였다. 41.3%가 그렇게 답했다.

이어지는 두 숫자가 더 인상적이다. 총회 가이드라인을 원한다는 응답이 69.8%, 'AI 목회지원센터' 출범을 원한다는 응답이 81.8%였다. 현장은 도구의 편리함을 알되, 그 도구가 흔들릴 때의 기준을 더 절실히 찾고 있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 문장은 짧고 단호하다. AI를 인격적 존재가 아닌 고도의 지능적 장치로 이해하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존엄을 대체할 수 없으며 오직 도구로만 기능한다는 선언이다. 오직 성경, 인간의 존엄성, 성령의 주권, 인격적 목양, 신학적 분별, 진실성과 투명성 같은 원칙들이 그 뒤를 받친다.

같은 주, 기장 제111회 총회도 'AI 목회 윤리기준 마련'과 정책·교육 토론회를 결의했다. 설교와 교육자료 작성에서 AI 활용이 늘면서 사실과 출처 검증, 저작권과 표절, 개인정보 보호를 교단 기준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허용과 금지의 이분법이 아니라,
책임의 선을 긋기 시작한 계절이다.


성도의 일상은 목회실의 생산성 논의보다 더 날카롭다

AI는 이미 목회실에 있다 — 남은 질문은 책임이다 본문 이미지

지난 8월 말, 미국장로교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진영이 내슈빌에서 연 AI & Church Summit은 Church AI Toolkit을 공개하며 AI 이슈를 기술 문제가 아니라 목회 돌봄의 현장으로 옮겼다.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이 그렇다. 세상을 떠난 자녀의 디지털 흔적으로 만든 챗봇이 업데이트 뒤 대답이 바뀌며 다시 상처를 준 이야기. 노인 대상 음성복제 사기. 배우자 사별 뒤 챗봇에 매달리는 이야기.

Tay Moss 목사는 그것을 기술 취향이 아니라 "애도의 문제"라고 불렀다. Olivia Lane 목사는 목회 소명 전체가 '최적화'에 저항한다고 말했다. 체화된 현존과 동행은 효율로 줄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구가 분별을 대신하게 두는 유혹이야말로, 지금 교회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같은 시기 미국 가톨릭주교회의는 'AI 시대 인간 존엄 보호'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고 기술기업과 의회를 만났다. 아동 온라인 안전과 취약층 보호까지, 교회가 AI를 설교 도구 논의를 넘어 공적 의제로 끌어올린 움직임이다.

그 신학적 바닥에는 교황청 교리부와 문화교육부가 2025년 1월 발표한 《Antiqua et nova》가 있다.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진정한 도덕 행위자는 오직 인간이라는 선언이다. AI는 인간 지능의 산물이며 대체물이 아니다. 공감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타자의 고유한 아픔 앞에서 침묵의 무게를 함께 지는 일은 복제되지 않는다.


남은 질문은 단순하다

AI는 이미 목회실에 있다 — 남은 질문은 책임이다 본문 이미지

설교 초안을 누가 썼느냐보다,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성도의 아픔은 누구 앞에서 열리는가.

AI 사용을 투명하게 밝히고, 상담과 심방 내용을 기계에 넣지 않으며, 예배와 돌봄의 인격적 자리만은 도구에 맡기지 않는 선. 합동과 기장이 긋기 시작한 그 선 위에, 각 교회가 구체적인 약속을 올려놓아야 한다.

주일학교 교재 한 장, 심방 메모 한 줄에서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AI는 이미 목회실에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 자리이다.


참고: 기독일보·국민일보·크리스천투데이 2026.9 / PCUSA 2026.8.28 / America Magazine 2026.9.16 / Vatican 《Antiqua et nova》 2025.1.28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22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