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덧붙임(9월 30일) · 학술대회는 9월 28일(월) 개막해 10월 1일(목)까지 이어집니다.
28일 기독교연합회관 — 개회와 베드포드-스트롬 의장 기조강연
29일 한신대 서울캠퍼스 신학대학원 — 과학과 종교의 대화(테드 피터즈·최승언·전철 교수)
30일 — 베드포드-스트롬 의장 특별강연
10월 1일 — 몰트만 기념 공개강좌, 공공신학과 민중신학의 대화
상세 일정은 대학저널의 한신대 보도(2026.9.22)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www.dhnews.co.kr/news/view/1065593728611950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에서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한신대,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
장소는 종로 기독교연합회관과 한신대 서울캠퍼스 신학대학원이다.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버클리공공신학포럼센터가 함께 주최하고, 주제는 '공공신학,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생물학'이다. 첫날 기조강연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 의장 하인리히 베드포드-스트롬이 '글로벌 시민사회를 위한 해방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맡는다. 이어 과학과 종교의 대화, 몰트만 기념 공개강좌, 공공신학과 민중신학의 대화가 차례로 열린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생태적 도전, 빠르게 바뀌는 과학기술 앞에서 교회가 공적 자리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묻는 자리다.

포로수용소에서 시작된 희망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으로 잘 알려진 현대 신학자다. 1926년 4월 8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고, 2024년 6월 아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희망은 책상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다. 열여덟 살에 징집된 그는 1945년 연합군에 투항해 1948년까지 벨기에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포로수용소를 전전했다. 무너진 조국과 불타 버린 고향, 수용소 철조망 안에서 그는 한 군목에게서 받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탄식하는 시편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그에게 먼저 다가왔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버림받은 이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의 희망은 낙관이 아니었다. 십자가를 통과한 희망이었다.
1964년에 나온 『희망의 신학』은 종말을 먼 미래의 추상으로만 남겨 두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부활이 연 소망이 지금의 교회와 세계를 붙든다고 보았다. 1972년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는 그 희망이 고난받는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음을 말했고, 1995년의 『오시는 하나님』에서는 종말론을 다시 한번 크게 정리했다.
십자가를 지나지 않은 희망은 낙관이 되고,
부활을 바라보지 않는 십자가는 체념이 된다.
한국과의 인연
한국과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제자였던 박봉랑 교수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한신대에서 군사정권에 맞서던 학생과 신학자들을 만났다. 민중신학자들과 처음 대화를 나눈 것도 이때였다.
독재의 시절, 그가 전한 '희망의 신학'은 고난 속에 있던 한국 신학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고, 한국을 제2의 고향처럼 여겼다는 회고도 전해진다.
그러니 탄생 100주년에 그의 유산을 다시 읽는 일은 한 학자의 이름을 기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교회가 절망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공동체로 설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공공신학이 유행할수록

다만 공공신학이라는 말이 유행할수록 조심할 지점도 분명해진다.
기독일보의 다른 기사(강지선 기자)는 이번 대회의 의제가 죄와 구원, 개인의 회심을 뒤로 미루고 신학을 세속 의제에 종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다. WCC 의장이 기조강연을 맡는 것을 두고 교단적 정체성이 흐려질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지적을 한꺼번에 무시할 필요는 없다. 교회가 세상과 대화한다고 해서 복음의 중심을 양보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우려가 있다고 해서 교회가 공적 질문 앞에서 입을 닫아도 되는 것도 아니다.
공공의 광장에 선다는 것은 복음을 묽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복음이 실제로 사람의 삶과 제도를 비출 수 있는지 시험받는 일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롬 1:16). 그 능력은 개인 영혼의 구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편지에서 바울은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함께 탄식한다고 말한다(롬 8:19-22).
그렇다고 사회정의나 생태 담론이 복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공공신학이 건강하려면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에 두고 이웃과 도시를 바라봐야 한다.
몰트만이 강조한 희망도 인간 진보에 대한 낙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역사를 끝까지 붙드신다는 고백에서 나왔다. 수용소에서 그를 붙든 것은 인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버림받은 자리까지 오신 하나님이었다.
희망이 빠진 공적 참여는 쉽게 이념이 된다. 공적 책임이 빠진 희망은 쉽게 도피가 된다. 둘을 떼어 놓으면 목회도 신학도 한쪽으로 기운다.

분당의 한 교회에서 보면

분당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자리에서 보면 이런 학술대회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 교회는 매주 예배와 양육, 심방과 선교를 감당하면서도 이웃의 아픔과 사회의 균열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전세 사기로 무너진 청년, 돌봄에 지친 중년, 혼자 사는 어르신, 기후 불안을 말하는 학생이 모두 한 예배당에 앉아 있다. 이들에게 "기도하십시오"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책 이야기만으로도 부족하다.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성도들이 주일 말씀을 품고 월요일이라는 공적 자리로 나갈 때, 그 말씀이 일터와 가정,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비출 수 있어야 한다.
공공신학은 거창한 학술 용어이기 전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에게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도 같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렘 29:7).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웃에게
베드로는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공공신학의 출발점은 여기다. 교회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당신들은 무엇을 믿기에 이렇게 사는가"를 물어 올 만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물음에 온유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청년부 토론이든 장년 소그룹이든 이렇게 함께 물어볼 수 있다. 우리가 믿는 희망은 이웃에게 어떻게 들리는가. 우리 교회가 사라진다면, 이 동네 사람들은 무엇을 아쉬워할까. 이번 주 내 일터에서 복음이 비출 수 있는 자리 하나는 어디인가.
공공신학은 교회가 먼저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이웃이 소망의 이유를 물어 올 만한 삶을 사는 일이다.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다가오는 학술대회를 지켜보며 나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들고 싶다.
하나는 복음의 핵심이다. 죄 사함과 새 생명, 교회됨과 성례, 말씀과 기도가 흔들리면 공적 발언도 공허해진다. 강단에서 십자가와 부활이 선명하지 않은데 광장에서 정의를 말하면, 그 말은 다른 수많은 목소리 가운데 하나가 될 뿐이다.
다른 하나는 이웃을 향한 책임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전 담장 안에 갇혀 있지 않다. 교회가 자기 안의 평안만 구하면, 복음은 교인들끼리만 나누는 위로가 된다.
몰트만 100주년이 한국교회에 남기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의 언어로 세상을 위로하면서도 진리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 균형이다. 그의 신학 전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십자가를 통과한 희망이 교회를 세상 앞에 세운다는 그 한 가지 통찰은 오늘 우리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학술대회가 끝나면 남은 과제는 다시 우리 교회의 강단과 심방실, 청년부 모임과 가정으로 돌아온다. 희망의 신학은 그곳에서 비로소 목회의 언어가 된다.

출처: 기독일보 2026.9.22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열린다」, 「한신대 '공공신학' 학술대회, 한국교회 본질 향방 경고등 켜지나」(강지선 기자) / 경기일보 2026.9.23 관련 보도 / 한신대 보도자료(대학저널·베리타스알파 게재)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25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