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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하나님의 형상 | 지능이 아니라 존엄, 교회들이 다시 묻는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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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 여러 교회가 AI를 두고 비슷한 말을 한꺼번에 꺼내기 시작했다.

미국장로교가, 미국 가톨릭 주교단이, 영국성공회 주교단이, 그리고 우리 한국의 기장 총회가 거의 같은 주간에 AI를 말했다. 질문도 달라졌다. 몇 해 전만 해도 "교회가 AI를 써도 되느냐"를 물었다면, 이제는 "AI 시대에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묻는다.

도구를 누가 더 빨리 익히느냐보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분별이 숙제로 놓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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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 형상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

미국장로교(PCUSA) 혁신네트워크는 9월 16일 화상 모임에서 AI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다뤘다.

인디애나폴리스 위더스푼장로교회의 윈터본 해리슨존스 목사는 질문의 방향부터 바꾸었다. PCUSA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핵심 신학적 질문은 AI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는가가 아니다. 이미 그 형상을 지닌 인간들이 AI로 빚어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지혜와 존엄, 책임과 주체성을 행사할 것인가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능, 생산성, 언어, 창의성으로 좁혀 버리면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가치를 인지 능력과 산출물로 재게 된다. 그에게 형상은 인간의 거룩한 가치이자, 관계와 돌봄과 정의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비추라는 소명이다.

같은 자리에서 아이오와주 스피릿레이크 제일장로교회의 마이클 게웨케 목사는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청소년 수련회를 준비하는 행정과, 목회적으로 살펴야 할 이메일을 놓치지 않는 일에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까지 맡길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설교에 한 번도 쓰지 않아도,
목회 행정의 방식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 구분은 현장 목회자에게 꽤 쓸모 있는 힌트다. AI를 쓰느냐 마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어디에 쓰고 어디에는 쓰지 않을지를 가르는 일이다.

미국 가톨릭 — 교황 회칙을 실행으로

같은 날,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CCB)는 'AI 시대 인간 존엄 수호를 위한 주교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의장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새너제이 교구의 오스카 칸투 주교다. 태스크포스는 인간 존엄과 종교 자유, 민주적 제도, 노동자와 가정, 그리고 취약계층을 지키는 정책과 실천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주교단은 이날 워싱턴 본부에서 기술 기업 관계자와 AI 전문가들을 만났고, 열 명 넘는 주교가 의회를 찾아가 AI 안전장치와 아동 온라인 보호 입법을 촉구했다.

이 움직임의 뿌리에는 교황 레오 14세가 지난 5월 발표한 첫 회칙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이 있다. 회칙은 기술을 인간에 맞서는 힘으로도, 그 자체로 악한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 다만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기술은 그것을 고안하고, 돈을 대고, 규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닮기 때문이다.

칸투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교회가 기술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특히 가장 약한 이들에게 무엇을 하는지 묻는 일을 더 미룰 수 없다는 뜻이다.

영국성공회 — 신처럼 느껴지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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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뒤인 17일 전후, 영국성공회 주교단은 옥스퍼드에서 나흘간 '기독교적 지혜와 인공지능'을 주제로 모였다.

케임브리지대 지나 네프 교수의 경고가 특히 날카로웠다. AI가 수백만 명에게 "항상 듣고, 항상 긍정하며,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신 같은 존재로 느껴지도록 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얇아진 지금, 교회가 목회적·신학적 길잡이를 내놓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경고는 가볍지 않다. 한밤중에 잠들지 못하는 청년이 기도 대신 챗봇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챗봇은 지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늘 맞장구를 쳐 준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위험하다. 늘 긍정만 하는 존재는 우리를 회개로도, 성장으로도 이끌지 못한다.

오랫동안 교회의 AI 논의를 이끌어 온 스티븐 크로프트 주교는 교회가 이 시대에 내놓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간 존엄과 인간 공동체"를 꼽았다.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복음을 자신 있게 전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참석한 한 주교는 창조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과, 서로와, 모든 피조물과 온전한 관계 속에 살도록 지음받은 인간이라고 정리했다. 몸을 입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인간다움의 일부라는 것이다.

한국 — 기장 총회의 결의

한국에서도 움직임이 이어진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9월 16일 제111회 총회에서 'AI 목회 윤리기준 마련'을 결의했다.

설교와 교육, 행정으로 AI가 빠르게 퍼지는 상황에서 기술을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교단 차원의 원칙과 교육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먼 나라 대형 교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에서도 같은 질문이 이미 일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 무엇으로 읽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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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교회는 이 한 구절을 오래 붙들고 여러 방식으로 읽어 왔다.

어떤 전통은 형상을 사람 안에 있는 무언가, 특히 이성과 사유 능력으로 보았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읽기는 오늘 AI 앞에서 가장 흔들린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빨리 계산하고, 더 많이 기억하고, 더 그럴듯하게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상을 지능으로 읽으면, 기계가 더 똑똑해질수록 사람의 자리는 좁아진다.

다른 전통은 형상을 맡겨진 일, 곧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소명으로 읽었다. 창세기 1장 26절과 28절이 형상과 다스림을 나란히 말하기 때문이다. 이 읽기는 AI 시대에 책임의 언어를 준다. 기술을 만들고 쓰는 일도 결국 청지기의 일이다.

또 다른 전통은 형상을 관계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곧 서로를 향한 존재로 지으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 칼 바르트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는 형상이 사람 안의 어떤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관계 자체라고 보았다.

그리고 신약은 이 모든 읽기 위에 한 분을 세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골 1:15).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닮았는지 알고 싶다면,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보아야 한다. 그분이 보여 주신 형상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이었다.

해리슨존스 목사가 형상을 지능으로 좁히지 말라고 했을 때, 그는 바로 이 흐름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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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똑똑한 도구보다 더 인간다운 목회

이 소식들을 한데 묶으면 이렇게 정리된다. AI가 설교 초안을 써 주고, 행정을 돕고, 위로의 말까지 건네는 시대에, 교회는 '더 똑똑한 도구'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더 인간다운 목회'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고 있다.

물어야 할 것은 우리를 닮은 기계를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주체성으로 기술과 서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다.

사람의 가치를 산출물로 재는 세상에서, 교회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곳이어야 한다. 병상에 누운 어르신, 말을 배우기 전의 아기,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 치매로 기억을 잃어 가는 권사님. 이들은 지능이나 생산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다. AI 시대에 교회가 먼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부목사로서 붙들고 싶은 세 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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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들고 싶은 원칙이 세 가지 있다.

첫째, 행정은 맡기되 선포와 분별과 심방은 넘기지 않는다. 게웨케 목사처럼 수련회 일정 조율, 자료 조사, 공지문 초안에는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사람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는 일, 한 사람의 상황을 놓고 분별하는 일, 병상과 빈소를 찾아가는 일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야 한다. 성육신의 복음은 대신 보낼 수 없는 몸의 복음이다.

둘째, 프라이버시의 선을 분명히 한다. 성도의 기도 제목과 상담 내용, 아동의 정보는 공개형 AI에 넣지 않는다. 편리함이 신뢰를 이길 수는 없다. 기도 제목 한 줄이 외부 서버로 넘어가는 순간, 그 성도가 교회에 맡긴 것은 더 이상 교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셋째, AI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청년과 청소년을 나무라지 않고 공동체로 초대한다. 그들이 챗봇을 찾는 이유는 대개 외로움이다. "그런 걸 왜 하느냐"는 말은 그들을 더 깊이 화면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대신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사람, 늦은 밤에도 답장해 주는 선배, 함께 밥을 먹는 소그룹이 필요하다. 네프 교수가 경고했듯, 신처럼 느껴지는 알고리즘 앞에서 교회가 할 일은 더 강한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따뜻한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청년부와 소그룹에서 나눌 질문

이 주제를 청년부나 소그룹에서 함께 나눠 보면 좋겠다. 질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아 본 적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편했고 무엇이 아쉬웠는가. 늘 내 편만 들어 주는 존재와, 때로 불편한 말도 해 주는 친구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 공동체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해도 환영받는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그런 환영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지혜는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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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AI를 다루는 방식은 결국 교회가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를 드러낸다.

사람을 기능으로 보면 AI는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도구처럼 보인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면, AI는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머물러야 할 도구가 된다. 그리고 교회는 기계가 결코 줄 수 없는 것, 곧 얼굴과 식탁과 기다림과 용서를 나누는 공동체로 남는다.

지혜는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존엄을 지키려고 내딛는 한 걸음에서 나온다.


함께 읽기

· 교단 AI 목회 가이드라인 정리 | 예장합동·기장 총회가 그은 책임의 선 —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19914561· 유엔 안보리의 AI 경고와 교단 가이드라인 | 속도보다 분별, 교회가 먼저 그은 선 — https://blog.naver.com/haramprok/224421869250

참고 자료

· Preserving and serving the sacred in an AI-shaped world, PC(USA) (2026.9.17)

· US bishops form new task force over AI concerns, meet with tech leaders, America Magazine (2026.9.16)

· Church of England 주교단 옥스퍼드 회의 '기독교적 지혜와 인공지능' 보도 (2026.9.17)

· 교황 레오 14세 회칙 『Magnifica Humanitas』 (2026년 5월)

· 국민일보, 기장 제111회 총회 AI 목회 윤리기준 결의 보도 (2026.9.16)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27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