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상에서 영상예배로 주일을 드리며 올린 기도입니다.
예배와 기도 · 기도문 · 시편 42편 4-5절 · 손하람 목사
이 기도의 흐름
시편 42편 곁에서 · 01 주일 아침, 침상에서 · 02 편치 않은 마음을 아룁니다 · 03 교회를 위하여 · 04 교회의 기도 제목들 · 05 화면 앞에서 예배하는 이들 · 06 기도의 시간이 늘어 감사합니다 · 07 회복을 위하여 · 08 마무리 기도 · 화면 앞에서 주일을 드리는 분들께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시편 42편 4-5절
오늘도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먼저 떠졌습니다. 몸은 누워 있는데 마음은 벌써 예배당 문 앞에 가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 와서 불을 켜고 있을지, 찬양팀은 몇 시에 모여 소리를 맞추고 있을지, 그 시간표가 여전히 제 몸 안에 남아 있습니다.
화면을 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편치 않은 마음까지 그대로 주님께 가져가려 합니다.
시편 42편 곁에서

오늘 기도를 붙들어 준 말씀은 시편 42편입니다.
이 시의 표제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입니다. 고라 자손은 성전에서 문을 지키고 찬양을 맡았던 레위 가문입니다(대상 9:19, 26:1). 누구보다 예배의 자리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이제는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있는 곳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6절). 요단 강 발원지와 헤르몬 산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북쪽 끝입니다. 성전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그는 예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를 이끌고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던 날을 떠올립니다(4절).
그 곁에는 조롱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 예배의 자리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은 몸의 거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흔들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같은 후렴이 세 번 나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42:5, 42:11, 43:5). 43편까지 이어지는 이 후렴 때문에 두 시편을 본래 한 편의 노래로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시인은 한 번에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세 번을 무너지고, 세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세 번 소망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절). 예배당에서 멀리 떨어진 그 자리가 기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 자리가 그렇습니다. 예배당은 멀지만 기도는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순서를 따라 기도했습니다. 먼저 편치 않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다음 떨어져 있는 교회를 품고, 마지막으로 다시 소망을 하나님께 둡니다.
01 주일 아침, 침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날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예배당에 가지 못하는 몸이지만, 주님은 오늘도 이 방까지 찾아오셨습니다. 화면 너머로 들리는 찬양 소리에, 말씀을 읽는 목소리에, 축도하는 손에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믿습니다.
누워서 드리는 예배가 가벼운 예배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자세는 바르지 못해도 마음은 바로 서게 하시고, 무릎을 꿇지 못해도 심령은 엎드리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이 자리에서 회중이 되었습니다. 늘 앞에서 섬기던 사람이 이제 뒤에서, 아니 멀리서 예배를 받습니다. 그 자리에서만 보이는 것들을 보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만 들리는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02 편치 않은 마음을 아룁니다

주님,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화면 속 예배당은 낯익은데 그 안에 제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습니다. 함께 찬양하던 얼굴들이 떠올랐고, 제 빈자리를 누군가 대신 채우고 있을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시편 기자가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던 날을 기억하며 마음이 상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오늘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오래 비워 두어도 괜찮은 것인지, 제가 맡았던 자리들이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저 때문에 누군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워 있으니 걱정만 부지런해집니다.
주님, 이 마음을 꾸짖지 않으시고 들어 주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원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조급함이 믿음을 밀어내지 않게 하옵소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시인이 자기 영혼에게 물었던 그 질문을 오늘 저도 제 영혼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스스로에게 했던 대답을 저도 따라 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제가 그 자리에 없어도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제 손이 닿지 않아도 주님의 손은 닿습니다. 이 사실을 머리로만 알지 않고 오늘 마음으로 믿게 하옵소서.
03 교회를 위하여
주님, 이제 제 걱정을 기도로 바꾸어 교회를 위해 아룁니다. 누워 있는 동안 교회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오늘은 그 교회를 오래 붙들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예배가 살아 있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교회의 예배를 지켜 주옵소서.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가 익숙한 순서의 반복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찬양이 입술에서만 맴돌지 않게 하시고, 기도가 형식이 되지 않게 하시며, 말씀이 들려지되 흘려듣지 않게 하옵소서. 예배당 문을 나서는 성도들의 발걸음이 들어올 때보다 가벼워지게 하옵소서.
오늘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신 담임목사님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한 주간의 무게를 지고 강단에 서시는 분입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서 찾아오는 허전함과 피로를 주님이 채워 주시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 주옵소서. 앞으로 전하실 말씀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더하여지게 하옵소서.
제 몫까지 지고 있는 동역자들
주님, 제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동역자들을 오늘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한 주간을 자기 몫에 제 몫까지 얹어 감당했을 것입니다. 힘들다는 말을 아꼈을 것이고, 제게 부담 주지 않으려 괜찮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합니다.
주님,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마옵소서. 지치지 않게 하시고, 몸이 상하지 않게 하시며, 가정이 서운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이 그들에게 소진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제가 돌아가는 날, 그 빚을 기억하고 갚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 몸을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다 보면 서운한 일도 생기고,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모르는 사이에 서로 멀어지기도 합니다. 작은 틈이 큰 균열이 되기 전에 주님이 먼저 메워 주옵소서.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서로의 형편을 먼저 묻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누구 한 사람이 빠져도 티가 나지 않는 교회가 아니라, 한 사람이 빠지면 모두가 그 빈자리를 알아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04 교회의 기도 제목들

주님, 누워서 교회를 생각하니 기도할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씩 올려 드립니다.
흩어졌다 돌아오는 성도들
추석 연휴를 지나 성도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에 다녀온 이들, 가족을 만나고 온 이들, 오히려 명절이라 더 외로웠던 이들이 있습니다. 가족과의 대화 속에 상처를 받고 돌아온 분들, 명절에도 찾아갈 곳이 없었던 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연휴 동안 예배의 자리를 떠나 있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옵소서. 한 번 빠진 자리가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시고, 누군가 먼저 안부를 물어 주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
교회학교의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그들이 교회를 부모님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알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리가 크고 빠른 시대에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게 하시고, 질문이 생겼을 때 교회 안에서 마음 놓고 물을 수 있게 하옵소서.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지치지 않게 하시고, 교사의 삶이 먼저 아이들에게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교회 안의 아픈 이들
우리 교회 안에도 병상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술을 기다리는 분, 오랜 투병에 지친 분, 몸은 멀쩡해 보여도 마음이 무너져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파 보니 그분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해도 주님은 다 아십니다. 그분들의 몸에 치유의 손을 얹어 주시고,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힘을 주시며, 교회가 그분들을 잊지 않고 찾아가게 하옵소서.
연로하신 어르신들
오랜 세월 교회를 지켜 오신 어르신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몸이 불편해 예배당에 나오기 어려워지신 분들, 혼자 지내시며 주일이 더 길게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가 그분들의 믿음의 수고를 기억하게 하시고, 그분들이 남은 날들을 외롭지 않게 보내시도록 곁을 지키게 하옵소서.
새로 온 이들과 떠나려는 이들
처음 예배당 문을 연 분들이 있다면 그 걸음이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낯선 자리에서 누군가 먼저 인사해 주게 하시고, 두 번째 주일에도 다시 오고 싶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마음이 멀어져 조용히 떠나려는 분들이 있다면, 떠나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채게 하옵소서. 교회가 그들을 붙잡지 못해도 주님은 놓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우리 교회가 담장 안에서만 교회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동네에서, 이 도시에서 교회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듣게 하옵소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지켜 주시고, 교회가 보내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교회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옵소서. 사역에 필요한 것들이 부족하지 않게 하시고, 맡은 이들이 정직하고 투명하게 섬기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교회가 사람의 계획보다 주님의 뜻을 먼저 묻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05 화면 앞에서 예배하는 이들
주님, 오늘 저처럼 화면 앞에서 예배드린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병실에서, 요양원에서, 집에서 혼자 예배드린 분들이 있습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예배당에 가지 못한 분들, 일터에서 쉬는 시간에 잠깐 화면을 켠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예배도 받아 주옵소서. 화면 너머로 드린 찬양도, 혼자 드린 아멘도 주님 앞에 똑같이 닿게 하옵소서. 오늘 제가 그 자리에 앉아 보니 알겠습니다. 영상 예배를 준비하는 손길이 얼마나 귀한지, 그 화면이 누군가에게는 교회로 가는 유일한 창인지를. 방송과 영상을 섬기는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여 주시고, 교회가 이 창을 소홀히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06 기도의 시간이 늘어 감사합니다

주님, 그런데 오늘 꼭 드리고 싶은 고백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저를 기도하게 했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닐 때는 기도가 늘 짧았습니다. 회의와 회의 사이에, 예배와 예배 사이에 급하게 드리는 기도가 많았습니다. 기도 제목은 수첩에 적어 두고, 정작 그 이름들을 오래 붙들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누워 있으니 시간이 생겼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천천히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한 가정의 형편을 오래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지나쳤던 기도 제목들이 이제는 하나씩 마음에 걸립니다.
주님, 이것이 은혜인 줄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픔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넓혀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몸이 멈추니 기도가 움직였습니다.
바울이 갇힌 자리에서 교회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던 것처럼, 저도 이 자리에서 교회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다시 일어나 바쁜 자리로 돌아가더라도, 이 시간에 배운 기도의 호흡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할 일이 많아진다고 기도가 다시 짧아지지 않게 하옵소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저도 기도할 힘을 얻었습니다. 그 기도가 제게 은혜가 되었듯, 제 기도도 누군가에게 은혜가 되게 하옵소서.
07 회복을 위하여
주님, 이제 제 몸을 위해서도 아룁니다.
회복의 과정이 생각보다 더딥니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가도 다시 조심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마음은 앞서가는데 몸은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 더딤을 견디게 하옵소서. 서두르다 다시 상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해야 할 치료와 재활을 성실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의료진의 손에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곁에서 돌보는 가족들에게 지치지 않는 힘을 주옵소서.
그리고 온전히 회복되어 다시 예배당에 서는 날, 그 자리가 당연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돌아간 자리에서 전보다 더 낮게, 더 감사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08 마무리 기도
주님, 오늘 주일 기도를 마칩니다.
오늘도 저는 예배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이 방에 오셨고, 교회는 오늘도 예배를 드렸고, 말씀은 오늘도 선포되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주님의 교회는 서 있습니다. 그것이 서운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편치 않았던 마음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걱정을 기도로 바꾸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누워 있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를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담임목사님과 동역자들, 찬양하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 아픈 이들과 연로하신 분들, 새로 온 이들과 멀어진 이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시인이 낙심한 자기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했던 것처럼, 저도 오늘 소망을 하나님께 둡니다. 다시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함께 하나님의 집에 올라갈 날을 기다리며, 그날까지 이 자리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그 연약함으로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화면 앞에서 주일을 드리는 분들께

몇 주째 화면으로 예배를 드려 보니, 작은 습관 몇 가지가 예배를 지켜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병상에서, 혹은 형편상 집에서 주일을 드리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예배 시작 몇 분 전에 먼저 화면을 켜 두십시오. 예배당에서도 자리에 먼저 앉아 마음을 가다듬듯, 화면 앞에서도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휴대전화 알림은 잠시 꺼 두면 좋습니다.
성경과 주보를 곁에 펴 두십시오. 설교 본문을 화면으로만 보지 않고 내 성경으로 따라 읽으면, 말씀이 훨씬 가까이 들립니다.
찬양은 소리 내어 따라 부르십시오. 누워 있다면 입술로만이라도 괜찮습니다. 혼자 부르는 찬양이 어색해도, 그 소리는 같은 시간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의 찬양과 함께 올라갑니다.
헌금과 기도 제목은 교회가 안내하는 방법으로 드리십시오. 영상예배라고 해서 예배의 한 부분을 건너뛰지 않는 것도 예배를 지키는 일입니다.
예배가 끝나면 한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십시오. 같은 예배를 드린 누군가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내면, 화면 앞의 예배가 다시 공동체로 이어집니다. 저도 그 문자 한 통에 여러 번 힘을 얻었습니다.
예배당은 멀어도
주님과 교회는 멀지 않습니다.
화면 앞에서 드리는 짧은 기도를 하나 덧붙입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드려도 좋고, 마친 뒤에 드려도 좋습니다.
주님, 오늘 저는 예배당이 아닌 이 자리에서 예배합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성도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화면 너머의 말씀이 제 마음에 닿게 하시고, 혼자 드리는 찬양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다시 그 자리에 함께 설 날을 기다리며, 오늘 이 자리에서도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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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드린 교회를 위한 기도에 함께 마음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누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저도 이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손하람 목사의 창가에 2026. 9. 28에 올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